<-- 중급수련장의 상태가...? -->
65화
깡! 깡!
"아니 글쎄, 조금만 더 힘을 줘서 때려 보라니까? 기껏 달궈놨는데 모양이 조금도 변하질 않는다구"
"노력하고 있다고요. 힘 스탯만 있었어도 쉬운 건데"
워랜드에서의 생산스킬은 보정 시스템 덕분에 굉장히 쉽지만, 저 자는 내게 '진짜' 대장장이 기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좋은 금속을 구해 높은 온도로 달구는 것부터, 망치질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찬물에 식히는 과정까지.
"보통 다른 게임에선 그냥 재료 가지고 클릭만 하면 되는 걸 이리 어렵게... 악!"
"집중하라고! 훅 갈 뻔 했잖아!"
실수로 쇠를 달구던 구멍에 손을 집어넣어버렸다.
현실이었으면 바로 4도 화상이고, 일반적인 게임 속이었어도 즉사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중급수련장이고, 시스템에 의해 무적상태로 보호받고 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에..."
[스킬 : 초급 대장장이 기술을 습득하셨습니다]
* * *
교관이 내게 요구한 대장장이 스킬레벨은 고급 1레벨.
절대 쉽다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기서 계속 노가다만 한다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다.
깡! 깡!
"이쪽이 살짝 튀어나왔잖아. 조금만 더 힘을 줘서"
"으으, 언제까지 이런 것만 만드는 거에요? 검 수리는 언제하죠?"
"이런 것부터 제대로 만들고 말하지?"
윽, 반박을 못하겠다.
며칠째 철을 녹여 못이라던가 정육면체 같은 거나 만들고 있으니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점점 쉬워지고는 있지만, 따분한 건 따분한 거지.
[끝이 살짝 구부러진 쇠못]
[갓 대장장이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자가 만든 쇠못. 연습이 부족해서 그런지 끝이 살짝 구부러져 있다]
[흠집이 난 철 정육면체]
[초보 대장장이가 연습용으로로 만든 물건. 용도도 알수 없을 뿐더러 면에 흠집도 있다. 대장장이 기술의 연마가 필요해보인다]
맨날 시발 이딴 창이나 뜨고...
그래도 웬 일인지 숙련도는 더럽게 잘 오르고 있었다.
[대장장이 스킬 숙련도가 초급 5레벨 로 올랐습니다]
[대장장이 스킬 숙련도가 초급 6레벨 로 올랐습니다]
중급수련장에 들어오고 1.5일차만에 초급 6레벨이 되었다.
대체 이 교관이 여기다가 무슨 주작을 쳐 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무지막지하게 빠른 속도로 숙련도가 오르고 있었다.
[평범한 쇠못]
[초급 대장장이가 만든 쇠못. 주름 잡을 곳 없이 평범하다]
3일차에는 이렇게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쇠로 만든 정육면체]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 흠집 없이 매끄러우며 각이 잘 잡혀있다]
4일차엔 드디어 흠집없는 정육면체를 완성했으며, 대장장이 스킬이 중급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벌써 중급까지 됐는데, 이젠 슬슬 수리해도 되지 않아요?"
"안된다니까"
"왜요? 중급이 아니라 초급 레벨만 돼도 할 수 있는 건데. 애초에 초보자의 검이라 쉬울텐데"
"하아... 그러면 한번 해 보던가"
"오예!"
워랜드에서 무기를 제작/수리하는 방법은 간단한 편이었다.
재료나 무기 파편을 달군 뒤 망치 몇 번 두드리면 재료에 따라 시스템이 알아서 장비를 만들어준다.
그런데...
[수리를 진행할 수 없는 파편입니다]
"시발 뭐라고?"
그럼 애초에 파편 아이템이 왜 있는건데.
아니 그전에... 저 교관은 그걸 알고도 여태껏 나한테 이 짓을 시킨건가?
"수리시키지도 못할 걸 가지고 수련만 시킬 생각이었어요?"
"진정하고 말부터 들어. 저건 '초보자의' 검이야. 그런데 넌 지금 몇 레벨이지?"
"저야 얼마전에 막 100레벨을 찍었.... 아!"
"이제야 알겠냐"
무한 내구도와 상관없이 초보자의 아이템은 100레벨 이상이 될 경우 자동파기된다.
그야 100레벨까지 초보자 아이템을 쓰는 사람이 없으니 나도 까먹고 있었지만, 이런 식의 파편으로 남았었지.
"초보자 아이템의 파편은 일반적인 수리로는 고칠 수 없어"
"파편을 재료로 새 장비를 만드는 '다시제작'만 가능하죠"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다시제작은 대장장이스킬 고급 이상부터 가능하다"
그런 거였구나...
"제가 오해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무리 싫은 사람이어도 잘못한 건 사과해야지.
* * *
대충 7~8일차 쯤 되었을까.
어느새 대장장이 스킬은 중급 9레벨.
밤이 깊었을 무렵, 자고 있는 교관 옆을 뒤로한채 나는 조용히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원래는 로그아웃하고 현실세계에서 쉬고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한번 직접 무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초보자의 검을 다시 제작해 깰 수 있을 정도라면 지금 만든 무기로도 충분하겠지.
"후아, 다 됐다"
[평범한 롱소드]
[중급 대장장이의 손을 거친 롱소드. 가볍고 날렵하게 휘두를 수 있지만 사거리가 약간 짧다]
실수로 리치를 짧게 만들어버린 건 아쉬웠지만, 무게가 가벼운 만큼 어떻게든 커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던전포탈은 지하층에 있는 걸 확이해둔 상태.
[이름 : 현우]
[아스칼 개국공신/처형인]
[레벨 : 105]
[HP : 1] [공격력 : 1]
[방어력 : 200]
[민첩 : 251 (+30)]
[보유스킬 수 : 5]
일주일동안 대장장이 노가다만 했는데도 레벨이 올랐다.
"민첩은 언제봐도 놀랍네"
좀있으면 300까지 찍을 기세다. 이정도면 진짜 하이랭커급인데.
"한번 좀 움직여볼까"
평소대로 말고, 아예 작정하고 빠르게 움직이면 어떻게 될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와 미친 존나 빠르구나"
지구에 살던 사람이 달에 가면 중력의 차이 때문에 몸이 훨씬 가벼워진다는 데, 그게 딱 이런 느낌일 것 같다.
발을 툭 튀기면 몸이 한번에 몇 미터씩은 이동한다.
진짜 나, 워랜드 육상선수 해도 되겠는데.
"이정도면 준비는 완벽하겠지. 몬스터는 역시 또 허수아비이려나?"
진동타격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준비는 하고 있어야지.
만만의 준비를 갖춘 채 나는 지하실의 포탈로 향했다.
...적어도 준비를 갖췄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
* * *
"대체 당신이 애를 어떻게 키웠으면 혼자 말도 없이 집을 나갔다 오는데요?!"
"내가 키웠다니? 같이 키운 애잖아! 이럴때만 나한테 책임 다 뒤집어 씌우면 다야? 그리고 친구들이랑 놀고 왔다잖아!"
"말도 없이 집을 나갔던 건 똑같죠. 참 나, 가족한테 말도 안하고 행동하는 건 누구한테 배운 건데요?"
"설마 지금 나한테 배웠다는 거야?"
"그럼 당신 말고 누가있어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분명 워랜드 속 대장간 안에서 포탈을 탔을 뿐인데, 현대의 집이랑 웬 낯익은 사람들이...
그때, 기억이 돌아오며 알아냈다.
지금 이 상황은 2004년 겨울 무렵의 우리 집.
내가 부모님과 누나와 같이 행복하게 살았던 마지막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