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급수련장의 상태가...? -->
64화
뭔가 허무한데.
초급 수련장은 그렇게 꽁꽁 감춰져 있으면서, 중급수련장은 대놓고 이런 도시 한복판에 있다니.
"누군가가 들어갔나요?"
"아직 아무도 없죠. 입문 수련을 통과했더라도 초급 수련장까지 직접 찾아야 통과해야되는데, 그런 사람이 많을리가요"
유희가 날 찾고 다가올 때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들어가봐야지"
"저기요, 못 들으셨어요? 초급 수련장까지 통과했던 사람들만 가능하다니까요?"
굳이 대답해줄 필요는 없겠지.
아, 그러고보니 유희가 싫어하지 않으려나?
애초에 날 혼자 위험한 곳에 보내는 게 싫다고 잠깐 쉬자고 한 건데, 이렇게 되면 또 혼자 가버리게 되네.
나는 말없이 그녀와 눈을 마주쳤고,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세요. 그렇게 위험한 곳도 아니잖아요? 대신 빨리 끝내고 오세요! 기다릴게요!"
"고마워..."
걱정하고 마음고생 많이 할텐데, 그런 그녀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빠르게 통과하고 나와야겠다.
"자, 그럼 가볼까"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몇 명에 불과했고, 그들마저도 제쳐 문 앞에 손을 가져다댔다.
"저 사람 뭐야?"
"아직 중급수련장이라는 걸 모르나봐. 초급 수련장 통과자도 아니면 못 들어갈텐데"
그래. 내가 못들어가나 보자.
[중급 수련장에 입장하시겠습니까? - 입장조건 : 초급 수련장 수료자]
근데... 확인버튼이 없어.
"설마 진짜 안들어가지는건가?"
"에휴 저 병신"
* * *
[초급수련장의 수료기록이 확인되었습니다. 입장조건을 만족합니다]
아날로그식으로 직접 문을 밀어야 열리는 방식이라니!
덕분에 한동안 여는 방법을 몰라 밖에서는 정말 말그대로 갑분싸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날 얼마나 멍청이로 봤을까.
어쨌든, 건물 안쪽은 빛이 들어오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번 차원왜곡 때처럼 무의 공간처럼 보인다기 보단 그냥 어두운 공간이라는 느낌.
땅이 밟히는 느낌도 나고 따뜻한 공기의 흐름이 피부에 와닿았다.
잠시후, 갑자기 앞쪽에서 세게 나를 세게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중력마법인가?"
그런 것 치고는 티끌만큼의 저항도 못할만큼 위력이 강력하다.
마치 시스템상 반드시 끌려가야 하는 것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강력해 눈을 제대로 뜨는 것조차 어려웠고, 그런채로 계속 끌려가던 순간.
"근데 이정도 끌려갔으면, 최소한 벽에 부딛혀야 되는 거 아닌가?"
지금있는 곳이 오픈필드도 아니고 중급수련장 건물 안인데, 끝도 없이 계속 끌려가기만 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무슨 중급수련장이 이래?
"중력에 저항해야되는게 과제일리는 없고. 어라? 끝난건가?"
앞쪽에서 날 끌어당기던 힘이 사라지자, 다시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래봤자 빛도 안들어오는 깜깜한 공간... 인줄 알았는데.
"여긴 또 어디야?"
건물 안이라곤 믿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푸른 하늘이 뻥 뚫려있고, 벽도 없이 초원이 늘어져 있는 '오픈필드'.
수련장은 이곳으로 텔레포트 시키는 포탈이었던건가. 잠깐, 그럼 여긴 또 어디야?
"시스템 맵은 펴지지도 않고"
지금 위치를 알 방법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아스가니아 대륙 어딘가인지, 아니면 또 차원왜곡인지.
"그래도 일단 중급수련장에 들어온 거니까, 버그라거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
당황한 것도 잠시, 나는 땅에 앉아 차분히 생각했다.
"오픈필드에서 중급수련이라. 으으, 역시 아무것도 모르겠단 말이지"
일단 저쪽에서 건물의 연기 같은게 나오고 있으니, 저쪽으로 가보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누군가가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어떤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럴 때 사람을 만난다는 건 좋은 걸 테니까...
"실례합니다, 혹시 누구 계세요?"
숲에 가려져 있던 건물은 대장간이었다. 아마도 안에있는 풀무에서 나온 연기였으려나.
아마도 저 안에는 대장장이 같은 사람이 있겠지.
있긴 한데...
"님이 왜 여깄어요...?"
"글쎄, 아마 너라서?"
"개소리 하지 말고요. 초급수련장 끝났으면 계속 거기 있을 것이지 왜 여기까지 따라오는 건데요오?!"
분명 나는 초급수련장을 수료한 뒤로, 저 이상한 사람이랑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왜, 그때 그 교관이 지금 내 앞에 서있는 걸까.
그것도 저런 대장장이 차림으로?
"글쎄다, 일종의 개인코치 같은 느낌이려나"
"말도 안돼. 입문 수련장 때는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고요!"
"입문이야 누구에게나 열린공간이니까 그렇지. 하지만 초급부터는 다르잖아?"
"그렇다는 건... 앞으로 고급 수련장에 올라가도 당신이 있을거라는 뜻?"
"정확해"
갑자기 수련장 찾아오기가 싫어졌다.
* * *
"하아, 진짜... 어쨌든 그래서, 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되죠?"
이왕 이렇게 와버린 거 저 인간이 수료 안하고 보내줄 리도 없을 거 같고, 그냥 빨리 끝내는 편이 좋겠지.
"알면서 뭘 그래. 허수아비를 작살내면 끝난다"
"허수아비가 없잖아요? 여긴 대장간인데"
"던전포탈 열어줄테니까 가면 된다구. 그런데, 그 전에 무기부터 있어야 되지 않겠어?"
"무슨 소리에요. 무기라면 당연히 있...!"
검이 없다.
항상 허리춤에 매어두었던 롱소드가 집히지 않았다.
하지만 인벤토리엔 있었다.
[부러진 초보자의 검]
"시발?"
파괴된 장비 파편이 말이다.
"그, 그래도 단검은..."
"귀속상태. 여기서 나갈 때 까지 못 써"
"그럼 맨손으로라도..."
"하아 진짜 답답하게 구네. 넌 무기가 없고, 여긴 대장간이야. 이쯤되면 슬슬 눈치챌 만도 하지 않냐?"
"그 말은, 중급 수련장의 컨셉은 대장장이라는 건가요?"
"정확히 말하면 '부족한 기술의 습득'인데, 너는 아마 대장장이 스킬이 선택된 것 같네. 그에 따라서 이 환경도 설정된거고"
부족한 기술의 습득이라.
아무래도 전투직업인 만큼(이름은 과학자지만 몬스터 사냥하니까) 생산계열 스킬이 빈약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대장장이 스킬을 올리는 수련을 하라는 건가.
아무래도 요리나 버프는 유희가 보완해주니 말이 되긴 했다.
"잠깐, 그렇다는 건... 대장장이 스킬 숙련도를 쌓을 때까지 님이랑 계속 있어야 된다는 뜻?"
"그렇지"
"..."
아아, 뒷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