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안 끝났어 -->
62화
[HP : 1,000,000]
"말도 안돼..."
뒤에 붙은 6자리 0만 없었더라면 말이 되는데, HP가 100만이라니?
설마, 저 녀석이 그런건가.
"대충 살펴봤더니 네놈, 생각보다 나약하더구나. 이래서야 내가 원하던 끈임없는 고통을 줄 수가 없지!"
"미친"
저 녀석의 사이코패스성은 둘째치고, 이 차원마법이라는 것의 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에 내 HP는 패시브 스킬로 1에 고정되어 있는 상태.
지금껏 그 어떤것도 방해할 수 없는 '고정'패시브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라는 소리잖아?
이 순간에도 거인이 찌르는 두 개의 창에 나는 HP가 깎이고 있다.
한 번 찌를때마다 닳는 HP는 1,000 정도.
1,000,000이라는 HP가 다 되려면 최소 천 번은 맞아야 된다는 소리였다.
"네가 모르나본데, 난 죽어도 다시 부활한다구? 그러니 이런 거는 전혀 쓸모 없는 짓이란 말야"
결국 HP가 닳아 죽게되면 아스칼의 중앙광장에서 부활하겠지.
공간왜곡 마법이라 할 지라도 내 몸은 사실상 그곳에 있으니 말이다.
"하하! 역시 아직도 머리가 안돌아가는 군. 네 녀석이 아직 아스칼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무, 무슨 소리를..."
"네놈은 이 왜곡된 공간 속에 갇혀있다. 이곳은 아스칼 같은 곳이 아닌,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공간이란 말이다. 즉, 부활한다 하더라도 텔레포트 포인트가 없는 곳이니 이곳에서 다시 부활하지"
"시발 뭐라고?!"
뒤져도 여기서 못 나간다는 소리잖아?
이거 큰일이다.
데스패널티가 중첩될 수록 아이템과 골드, 경험치에 막대한 손실이 잃어나게 된다.
연속적으로 계속 죽을 경우 레벨이 떨어지고 떨어져, 결국 초보자 버프로 더 떨어질 수 없는 레벨대 까지 떨어지게 되면...
상상하기도 싫다.
이렇게 무한 척살의 고리에 빠질 순 없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슈욱.
또 하나의 창이 날아온다.
"윽!"
몸이 묶여 회피가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막으려고 했다.
"어라?"
스택이 쌓인다. 대체 왜지?
단순한 버그였던 걸까? 아니면... 방금 전 몸을 비튼 행위도 창을 공격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던 건가?
혹시 몰라 다음 창이 날아올때 다시 한번 몸을 비틀어 창을 쳐내려 해보았다.
역시 스택이 쌓인다.
위이잉.
갑자기 사고회로가 풀가동된다.
방법이 생각나긴 했는데, 이게 가능한건가? 만약 가능만 하다면... 나갈 수 있어.
"하압!"
비록 쇠사슬을 끊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림자도약으로 녀석에게 다가가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물론 시전이 끝난 뒤에는 다시 꽁꽁 묶인 신세가 됐지만.
"꽤 사람 놀라게 만드는 능력이 있군. 뭐, 그뿐이지만. 설마 내 공간에서 네놈 뜻대로 될 거라고 생각했나?"
좋아, 역시 스킬 사용은 가능하구나.
시전자가 원하는 설정을 위해 스킬의 효과를 무시할 순 있지만, 스킬의 시전 자체를 제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거리는 다시 벌어졌고, 여전히 나는 두 거인들의 창에 찔리고 있다.
하지만...
"셋, 넷, 다섯, 여섯"
찔릴 때마다 몸을 비틀어 창을 공격하는 판정을 만들어냈고, 들키지도 않고 꾸준히 스택을 쌓고 있었다.
"꽤 저항이 끈질기구나.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발버둥은 치고 싶다는 건가"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충분한 스택이 쌓이면 녀석을 죽이고 이 망할 공간을 빠져나갈 수 있다.
목표가 생기자 쉴새없이 공격에 노출되어 쌓이고 있는 정신적인 고통도 견딜만 해졌다.
이를 꽉 깨물고, 그저 우직하게 말없이 스택을 쌓을 뿐이었다.
"육십사, 육십오, 육십육..."
아직 안돼. 분명 저 녀석도 마법으로 HP를 꽤 올려뒀을 것이고, 안전빵을 위해서라도 풀스택을 쌓아 영혼의 울림으로 끝내야 한다.
다행히 HP는 많고 녀석은 눈치를 못 채고 있으니 시간은 많다.
...라고 생각했는데.
"표정이 꽤 좋아보이는 데? 이제 이런 것쯤은 살만 한가보지?"
쿠구궁
저 망할새끼가 손가락을 툭 튀기자, 두 거인의 뒤로 수십명은 되어보이는 거인들이 더 나타났다.
순식간에 창이 수십개로 불어났고, 그 모든 것들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죽어! 죽어! 죽어! 꺄하하!"
"이 씨발!!!"
머리가 아찔해져 정신을 못 차리겠다.
그나마 견딜만은 했던 공격들에 의해 정신이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100만이나 되었던 HP가 훅훅 깎이고 있다.
여기서 죽으면...!
잠깐, 유희 씨는?
승현이는, 수아는, 테오는?
이 자리에 주저앉아 갇혀버리면, 밖에 있던 그 사람들을 영영 볼 수 없어.
심지어 유희 씨는 친구 목록에 추가도 안 되어 있어서 설령 늦게 되면 정말 다시 만날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다.
전쟁에서 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땐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는 거니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그냥 나만 멀어지는거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히 서로 만나며 친하게 지낼 동안, '나만' 그들을 잃는 것이다.
단지 내 노력이 부족했기에.
"칠십팔, 팔십, 팔십이, 팔십사"
초당 열번 가까이 되는 공격에 모두 받아치진 못했지만, 그래도 스택이 훨씬 빠르게 쌓였다.
그리고 마침내 풀스택, 90타 째가 되었을 때.
"지금이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날 묶고 있던 쇠사슬이 터져버렸다.
공격모션의 피해가 들어갔고, 190만이 넘는 데미지를 감당하진 못했겠지.
여전히 거인들은 창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저 미친 마법사새끼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무, 무슨?!"
"좆까고 지옥에나 떨어져라 사이코패스 새끼야!"
또다른 쇠사슬이 튀어나와 다시 내 몸을 묶기전에, 나는 그림지도약으로 녀석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 직후 이성을 되찾은 녀석이 쇠사슬을 소환할때 유화술로 피해주고, 녀석의 등 뒤에 서서 있는 힘껏 검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영혼의 울림에 진동수까지 터뜨려서 녀석에게 최후의 고통을 선사했다.
동시에, 공간을 유지시키고 있던 시전자가 사라진 이 세계는 빠른 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됐어, 됐다고 시발..."
* * *
춥다.
왜곡된 공간에 갇혀있는 동안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온몸에 송송 배어 있던 땀이 식으며 체온이 쫙 빠져나갔다.
"돌아온 건가?"
눈을 뜨자 아스칼 성의 성문 앞에 힘없이 서 있었다.
마법사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에 세뇌가 풀려 정신이 돌아온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는 유희 씨도.
마치 펑펑 울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다.
지금도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있다.
"유희 씨... 허억!"
"제발... 멋대로 사라지지 말라구요. 걱정된단 말야. 현우 님이 안에서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면 진짜 미칠것 같아요"
이젠 완전히 눈물 참기를 포기한 그녀가 내 품에 안겨 울었다.
"저 현우 님 좋아해요! 항상 곁에 있고 같이 웃고 싶은데, 이렇게 그냥 사라져버리는 건 싫어"
"그런..."
"당분간, 정말 잠깐만이라도 좋으니까. 위험한 일은 하지 말아주세요. 며칠만이라도 이런 거 없는 곳에서 같이 쉬어요"
나는 당황해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제, 제가 너무 무리하게 부탁드린건가요? 그런거라면 죄송해요. 괜히 너무 참견질만 해서..."
"아뇨, 그런거 아니에요"
"네?"
"저도 유희 씨 좋아하니까, 절대 미안해하지 마세요.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좋은데 알아볼게요. 이 게임속에서 쉬게 된다면, 전 유희 씨랑 같이 보내고 싶어요"
이때 무슨 생각으로 저런 돌직구를 날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성이 힘을 잃었다는 것.
30분 동안 망할 공간에 갇혀 있던 것도 잊은 채로, 우린 서로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 작품 후기 ==========
으아아... 저질러버려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