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안 끝났어 -->
61화
우선 단검을 꺼내 성문 앞으로 다가오는 사람들 다리 사이에 하나씩 던져 움직임을 저지했다.
그리고는 무장한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주머니를 들춰 보이는 무기는 전부 뺏어가 앞사람들 다리 사이 남은 공간에 던졌다.
유화술, 그림자 도약에 스킬도 다 써가면서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시위대의 무장을 순식간에 해제한 채, 나는 맨 앞에 서 있는 사람들 목에 검을 겨눈 채로 또박또박 말했다.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는데, 대충 이쯤 하지?"
"어, 어느틈에...!"
너무 빨라서 쫄아버린 건가.
물론 내가 이자리에서 그들을 죽일 정도로 스택이 쌓이려면 어느정도 걸리겠지만, 당분간은 이정도로 충분히 위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아마 이 정도면 마나의 흔적이 주인을 찾아갈 수 있을 거야.
나는 인벤토리에서 유희 씨에게 받은 마나의 흔적을 꺼내보았다.
푸른 빛의 작은 눈물을 고체화 시킨 것과 같은 외형.
짧게 톡 건드리자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라는 메세지가 나타났고, 잠시 고민 끝에 나는 확인을 눌렀다.
마나의 흔적은 산산히 분해되어 날아가, 바로 내 앞 사람 뒤에 있는 남자에게 닿아 사라졌다.
파앗!
연한 푸른색 물결 이펙트와 함께 마나의 흔적 아이템은 소멸.
왕실 서재에서 국왕을 납치하고 전언 마법으로 거짓 연설을 하게 만든 장본인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완벽범죄를 계획했더라면 이런 것 쯤은 회수 했어야지. 국왕납치까지 벌여놓고 너무 허술한 거 아니냐?"
녀석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지금,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전부 정지해있다.
"기억조작 마법인가? 광장에 있었던 실제 목격자들을 전부 조작하려면 마나 꽤 들었겠는데"
"그랬으면 좋았겠지. 하지만 이 사람들 말야... 생각보다 너무 순진하더라고. 국왕이 썩어빠졌다고 믿게 만들고 선동질 해도 전~~혀 넘어올 기색이 없어서 말이지"
"무슨 소리야. 기억조작이 아니라면... 설마?!"
"그래, 단체 세뇌다"
"미친. 말도 안돼"
군중제어 스킬 중 거의 최고 난이도 스킬이자, 마법스킬 고급 이상이 아니면 사용하기도 힘든 마법인데, 그걸 저 사람들한테 단체로 걸었다고?
마나소모고 나발이고 웬만한 사람이라면 정신력이 못 버틴다.
랭커에게도 어려운 일을 NPC 마법사가 해냈다니, 저렇게 강한 사람이 있었다는 건가?
"슬슬 세뇌는 풀어줘도 되지 않아? 어차피 곧 감방 들어갈텐데, 탈출할 생각을 해서라도 마나를 아껴두는 게 어때?"
"내가 탈출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음, 네 마법 능력이 뛰어난 건 알겠지만, 별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안해. 감옥 외벽에 에테르로 떡칠을 해 놓을 거니까"
주변의 마법을 전부 흡수할 테니, 사방이 에테르로 둘러쌓여 있는 곳에선 아무리 녀석의 마법이라 한들 전부 차단당할 것이다.
"일개 마법사 한 명을 가두는 데는 너무 돈 낭비라 생각하지 않나?"
"캣츠가 고작 너 한 놈한테 아스칼의 반란을 맡겼다는 건 그쪽에서도 꽤 능력 있는 놈이라는 건데, 그런 놈을 가두는 거라면 오히려 이득이지"
"어, 어떻게 그 이름을... 그런가, 다 알고 있었던 건가"
잠깐동안 녀석은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다는 듯 다시 침착해졌다.
"마지막으로 할 말 같은거 없냐? 앞으로 간수 외에 누군가에게 말을 할 마지막 기회일텐데"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여기 있는 모두가 앞으로 말동무가 되어 줄테니 말이야!"
"무슨 개소ㄹ... 시발 당했다!"
녀석이 속주머니에서 공처럼 생긴 폭탄을 꺼내들었다.
성을 통째로 폭파시킬 생각인가?
여기서 터지면 성은 둘째치고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잘못 터졌다간 NPC들은 전멸이다.
"그럼, 모두들 잘 가게!"
"그렇게 되게 둘거 같냐!"
나는 마법사 녀석의 배를 찔러 손에서 폭탄을 떨어트렸다.
저 쪽 너머의 호수로 던져버릴려 했지만 젠장, 시간이 부족해. 곧 터질 것 같다.
이렇게 된 거, 데스 패널티 한 번을 감수하고서라도 막아야돼...
나는 최대한 몸을 웅크려 폭탄을 감싸안았고, 내 예상대로 그것은 얼마가지 않아 폭발해버렸다.
"어? 왜 안 죽지?"
분명 폭발 이펙트가 생겨나는 것까지 확인했는데, 사망했다는 메세지 같은 것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검은 공간은 뭐야?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위쪽?
중력을 무시하고 내 한참 위 쪽에 서 있는 마법사 녀석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쉬지 않고 웃어댔다.
그 모습이 마치 미친 정신병자처럼 보였다.
"이래서 칼 휘두를 줄 밖에 모르는 멍청이들은 안된다니까. 설마 그게 그냥 폭탄으로 보였을 줄이야"
"너 이새끼... 무슨 짓을 한 거냐"
"잘들어라 꼬맹아. 내가 한가지 지식을 알려줄테니. 9클래스 마법 다음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지?"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9클래스가 끝이지 말도 안되는..."
"땡! 땡이랍니다!"
"으윽! 시발 이게 뭐야?!"
속박되는 느낌과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순식간에 무언가 창 같은 것이 내 몸을 궤뚫었다.
"정답은 차원마법이다. 이 세계의 것을 넘어서 저 너머 차원에서부터의 에너지를 다루는 마법. 예를 들면, 지금의 공간 왜곡 마법 같은 것 말이지!"
공간 왜곡 마법이라니.
이곳은 녀석이 만들어낸 공간이라는 건가.
"이곳에서는 무한한 차원에너지로 무기를 만들어내거나 미지의 종족을 소환하는 등, 시전자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그야말로 '신'이 되는 것이다! 네놈도 그런 것을 갈망하진 않느냐?"
"솔직히 별로 안 땡기는데"
"...뭐?"
"어차피 니 힘도 아니잖아. 그냥 차원의 힘을 빌려쓰는 거지. 일진한테 붙어서 쪽쪽 빨아먹는 따까리랑 다를게 뭐 있냐?"
좋았어, 슬슬 보인다.
분함을 참지 못한 녀석의 어금니가 부득부득 갈려나가는 것이.
이러다보면 결국 이성을 주체하지 못한 녀석은 자연스레 빈틈을 보일거고, 그러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을 수도...
"그래, 네놈의 생각이 그렇다 이거지! 과연 네가 그렇게 무시한 그 차원의 힘을 얼마나 버틸수 있을지 볼까!"
"시발"
정확히 말하면, 저 녀석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단지 그것으로 틈을 보이게 만든 것이 아닌, 성질만 건드려서 그냥 빡치게 만들어버렸다.
결론은 괜히 신경 긁었다가 더 좆된 것이다.
쿵! 쿵! 쿵!
"으윽! 윽...!"
잠시후 빛이 밝혀지며 내 주위에 있던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친 저게 뭐야"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거인들이었다. 그렇지만, 타이탄 같지는 않아.
참회의 공간에서 이상하게 변질된 이들을 제외하면 본래 타이탄은 인간과 똑같이 생긴 종족.
하지만 저 녀석들은 그냥 거대한 몬스터처럼 보이는 거인들이었다.
나는 현재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쇠사슬에 묶여 그들이 찔러대고 있는 창에 궤뚫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프다.
게임이라 그런지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에 직접적으로 피해가 갔다.
피격 신호로 발생하는 진동이 머리를 깨질 것 같이 만든다.
"잠깐"
그나저나 나, 왜 죽지 않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