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안 끝났어 -->
60화
"약간 제가 알던 시장이 할 법한 소리처럼 들리지는 않네요..."
"약간이 아니라 그럴리가 없잖아요! 그 시장이 이딴 소리를 할 리가 없다구요!"
자세한 걸 알기 위해서는 그가 연설하고 있는 곳으로 가 보아야 했다.
우리는 남은 스테이크를 입에 탈탈 털어놓고는 곧바로 중앙광장으로 달려갔다.
여전히 연설은 계속되고 있었다.
"허억...허억..."
"앞으로 아스칼은 힘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 강자들의 왕국이 될 것이며, 그들의 힘으로 우리는 국력을 키워 갈..."
씨익.
그런 거였구나. 이제 알겠어.
나는 허리춤에서 단검 한자루를 꺼내 광장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국왕을 향해 겨누었다.
"뭐하시는 거에요?! 아무리 그래도 국왕을 죽이시면..."
옆에 있던 유희 씨가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난 상관도 안 한채 다트 던지듯 단검을 투척했다.
푹.
"피, 피격 이펙트가 없어...?"
"허접하게 코스프레 하는 건 진작에 알아봤죠. 이딴 환영마법이나 걸어놓고 속아넘어가다니 참, 여기 사람들도 순진하다니까"
방금전까지 가짜 연설문을 줄줄 읊고 있던 가짜는 공격을 받자 마법이 풀려 허수아비로 돌아가 있었다.
중간중간 움직임이 이상하게 끊기고, 무엇보다 명성이 높은 플레이어인 내가 시야 앞까지 왔는데도 눈길 한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기본적으로 NPC들은 자신과 관련이 있거나 명성수치가 높은 플레이어에겐 잠깐이라도 시선이 움직이게 되어 있다.
난 현재 명성도 꽤 높은 편인데다 아스칼에서는 개국공신인데, 진짜 국왕이라면 날 잠깐이라도 똑바로 쳐다봤어야 했다.
"자 이제, 이딴 일을 벌인 게 누군지 한번 알아봐야겠군"
순식간에 중앙광장은 혼란에 휩싸였다.
* * *
내가 생각하는 이번일의 가장 유력한 배후는 당연히 캣츠다.
어떤 방법을 썼든 그를 납치한 뒤, 기절시켜 광역 통신 마법을 건 후 전언(傳言)마법으로 그들이 원하는 연설문을 전달했겠지.
이것으로 캣츠가 아스칼의 승리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라이칸이 이길 거라 생각했으니 그것도 당연해.
"참나, 대체 이럴꺼면 시청 경비들은 왜 세워뒀던 거야? 정작 중요한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내빼기나 하고"
아예 대놓고 환영마법으로 국왕처럼 만들어서 왕성에서 나오는 장면까지 연출했다니까 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 전에 납치됐다는 걸 알아차렸어야지!
지도에서 캣츠의 시설의 위치를 찾는다면 뭔가 알아낼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하필이면 이럴 때는 그게 도움이 안돼...
구 시청, 즉 왕성에도 딱히 단서가 있지는 않았다.
전쟁이 막 시작할때 즈음 그와 얘기를 나누었던 방이라던지, 집무실이라던 곳도 깨끗했다.
"여기 뭔가가 있는데요?"
"에? 전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유희 씨가 서재 중간 부분 쯤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요, 이거 안 보이세요?"
"아이템 실루엣은 커녕 먼지 한 톨 안보이는데요? 아, 혹시 아이템 이름이 '마나의 흔적'인가요?"
"네. 일단 제가 주웠어요"
가끔, 고위 마법을 사용하고 나면 주변에 남는 아이템이다.
말그대로 시전자의 잔여 마나가 마법이 풀린 이후에도 주변에 남아 아이템의 형태로 존재하는 현상.
...이라고 거창하게 설정되어 있지만, 사실상 별로 쓸모는 없는 아이템이다.
"근데 현우 님은 왜 이게 안 보이지?"
"저는 마나가 없는 아바타라서 그래요. 거기다가 지능 스탯 자체도 조건 미만이라 아마 안 보일거에요"
"아아"
"그나저나, 이걸로 단서는 하나 찾았네요"
마나의 흔적은 사용할 경우 본래 시전자에게 찾아가 그 사람의 마나를 극소량 회복시켜준다.
그야말로 정말 '극소량'이기에 다들 별로 신경 안쓰고 있는 아이템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얘기가 다르지.
"이게 시전자에게 돌아갈때는 푸른 빛의 이펙트가 발생하니까, 그걸 통해서 국왕에게 마법을 건 게 누군지 알 수 있을거에요"
문제는, 바로 코 앞의 거리에서만 사용 가능하니 일단 용의자붜 찾아야 겠지만 말야...
그때.
"큰일났습니다!"
갑자기 서재의 문이 벌컥 열리며 한 경비가 소리쳤다. 이마에는 땀이 가득 배어있고 표정을 보아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듯 하다.
"과, 광장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요!"
* * *
설명을 듣자하니 대충 이러했다.
몇시간 전 가짜 국왕의 연설을 진짜로 받아들여버린 백성들 수천 명이 오해로 인해 중앙광장에서부터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아까 그건 진짜 국왕폐하의 연설이 아니라구요! 가짜가 환영마법을 쓴거라니깐요?!"
"그걸 어떻게 믿어! 사실 네놈들도 다 한통속인 거지?!"
"광장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들도 있다니까요? 하아 진짜, 현우 님. 이분들 좀 어떻게 해보실 수 없으세요?"
"못합니다. 이미 이중에 거기 있던 사람들도 있는데요?"
"네? 말도안돼... 그럼 이 사람들은 가짜 허수아비가 들통나는걸 직접 봤는데도 이러는거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런거겠죠 아마? 저도 지금 뭐가 뭔지 모르겠다구요"
심지어 개중에는 완전무장한 상태의 기사들도 많이 있었다.
아니 이 인간들은 기껏 지들이 싸워서 이겨놓고 끝난 다음에 지랄인 건데?!
위험해.
단순한 오해치고는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심지어 지금은 아스칼 병사들도 대부분이 옛 라이칸 영토를 정리중이라 우리끼리 이들을 막는것은 불가능하다.
젠장, 어쩌라는거야?
* * *
"언제까지 쫄보처럼 숨어만 있을거냐 슈미츠! 정정당당히 나와서도 말해보시지?"
"하아... 글쎄 납치됐다니까"
이젠 대놓고 왕성 앞까지 쳐들어와서 이 짓 중이니, 나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막으려는 시도라도 해 봤자 머릿수에서 밀린다.
아까도 말했듯 테오를 포함한 대부분의 군대는 라이칸 측에 가 있고, 남아있는 군대조차 일부가 시위에 오히려 동참한 상태.
캣츠가 관여한 것은 이제 거의 기정사실이고, 고작 나와 병사 스무 명 정도로는 이들을 막는 것이 불가능했다.
...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건 좀 심한 거 아니냐?
"우리가 믿고 지지했던 왕국은 라이칸의 뒤나 따르는 곳이 아냐! 자유의 도시 아스칼을 되찾자!"
"전부 불태워버려! 다시 시작하는 거야"
"..."
얘네 무슨 정신병 같은 거 걸렸나.
대한민국에서도 아무리 지도자가 잘못했다 한들 비폭력 집회에서 끝나는 일을 무기까지 들고 왕성을 불사르겠다?
이건 도가 지나치다.
에휴 그래 뭐, 지금 진압하다 한 번 죽더라도 상관없겠지 뭐.
테오한테 이미 연락도 해둔 상태고, 설령 놈들이 왕성까지 들어간다 하더라도 곧 군대가 와서 그들을 제압할 것이다.
쉬익.
팅!
툭.
슈욱.
파앗!
"다들 이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