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번째 왕국 -->
56화
"대장, 뭐가 좀 보이십니까?"
"아니. 아직 아무것도 없어. 너~~무 평화로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번에 올 공격을 대비해 시장은 성벽이 있던 곳 100미터 즈음 앞에 참호를 건설했다.
도시 내의 방어선이 모자란 만큼 탱커 계열인 테오는 아스칼 군대와 남았고 나와 유희 씨, 엔초를 포함한 포도당 몇명이 이곳에서 저 너머 라이칸 쪽을 감시하고 있었다.
"참나, 지금이 전쟁중이 맞기는 한 거야? 군대는 커녕 새 한마리 안 보이는데"
때마침, 참새 한 마리가 참호 위를 날아다니며 쌍안경으로 너머를 지켜보고 있는 내 손에 똥을 묻히고 갔다.
"...적어도 새는 있나보네요"
"아악 씨바아아알!!!"
나는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인 에드바르 뭉크의 걸작품 '절규'를 시전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짓인지 급 현자타임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요즘 상태가 말이 아니다.
부재중일때 큰 전투라도 벌어질까봐 최근에는 한계에 부딪힐 정도로 워랜드에만 접속해 있는 상태.
외줄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최대연속접속시간이 다 되어갈때즈음에만 접속을 종료했고, 밥 먹고 쉬다가 1시간 후에 바로 다시 접속했다.
몸이 한계인 건 당연한 일이지만서도...
그렇게 들어와놓고도 하는 일은 이 지긋지긋한 참호에 틀어박혀 오지도 않는 적들을 살피고 이렇게 참새 똥받이나 하고 있다.
"유희 씨, 멘탈 치유 마법같은 건 없나요..."
"그런 게 있었으면 저한테 제일 먼저 썼을 걸요. 자자, 힘내시고 점심 드세요!"
유희 씨가 최전선(지금은 아니지만 전투가 벌어질 경우 최전선이 될 테니까)에 합류한 것은 당연히 싸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이렇게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주 직업이 요리사인 만큼 우리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일종의 취사병이라고 해야 되나.
아냐, 이건 좀 어감이 마음에 안 드는데.
차라리 그냥 서포터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그렇게 멘탈이 거의 바닥까지 갈리던 그 즈음, 마침내 라이칸 쪽에서 무언가 달려오고 있었다.
"유저들 군대인가?"
달려오고 있는 거의 전원에게서 플레이어 표식이 보였다.
기본적인 NPC 군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숫자가 꽤 많았다.
역시 라이칸은 저런 전술도 사용할 수 있구나.
현재 '제 5의 왕국' 이벤트에 참여한 워랜드 유저는 대략 10만명.
그 중 단 10% 정도만이 아스칼을 택했고, 나머지 9만명은 전부 라이칸에 가 있다.
"그래도 머릿수가 많은 만큼 그렇게 강하지는 않아보여. 테오한테 연락해서 지원요청하고, 도시의 군대가 상대할 동안 우리는 몰래 뒤를 치자"
"네! 지금 바로 위장하겠습니다!"
엔초와 그의 부하들은 뒤쪽에서 지푸라기와 수풀 따위로 참호 위를 덮었다.
바로 앞에서 유심히 관찰하면 다 들킬만한 허접이었지만, 저들은 아스칼만 바라보고 달려갈 테니 상관 없었다.
"숨소리도 내지마"
터벅.
라이칸의 군대가 바로 앞까지 다가온게 느껴진다.
여기서 들킨다면 모든 계획이 틀어질 것이다.
다행히도, 녀석들은 참호를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지나갔나?"
그제서야 참호 지붕을 아주 조금 들추고 밖을 보았다.
라이칸의 군대는 이곳을 지나 아스칼로 곧장 향하고 있었다.
무너진 성벽 앞에서 당당히 서 있는 테오의 군대에 거의 다가갔을 때 즈음.
"자, 이제 우리도 움직이자"
쌈싸먹기를 시전할 때다.
라이칸의 군대의 레벨 평균은 60~70 정도.
숫자도 대략 천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리 어려운 싸움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우린 무기를 챙겨 방호 위로 올라왔다.
당연히 쥐고 있는 검은 시장에게서 받은 마비 검.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전원에게 제공되었기에 엔초와 포도당들도 전부 마비 검을 쥐고 있었다.
"뒤, 뒤에서도 온다!"
"뭐라고?! 미친, 양각이다!"
"쫄지 말고 바짝 붙어!"
최대한 빠르게 달려 놈들 바로 뒤까지 붙자 녀석들이 하는 말이 조금씩이나마 들려왔다.
꽤 당황한 모양이네.
"걱정하지 말라고. 죽이지는 않을거니까"
"크헉!"
퇴로 따윈 없다.
갈 곳을 잃은 녀석들은 그자리에 바짝 붙어 공격을 방어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고, 혹시라도 빈틈이 생기면 우린 바로 그 틈을 찔러 기절시켰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방패에 몸을 숨긴채 둥글게 모여 고개도 빼꼼안하는 거북이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그게 효과가 있다는 점이었다.
팅! 팅!
"젠장, 뚫을 수가 없어!"
가볍고 마법에 특화된 마비검인 만큼 방패를 관통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테오가 드래곤 슬레이어 용혈 장검을 휘두르며 방어진을 간신히 파고들고 있었지만 굉장히 느렸다.
"제길, 조금만 더 버텨! 조금 있으면 2차 병력이 온다!"
"...?!"
2차 병력이라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우린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지금은 아스칼 군대 앞에 라이칸 군대가 있고, 그 앞에 우리가 있어 양각을 잡은 상태.
여기서 라이칸 2차군대가 우리 앞에 온다면 오히려 우리가 역으로 양각을 잡히는 것이다.
더이상 시간을 끌리면 안돼.
"하지만 이런 검으로는..."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휘두르느라 스택도 안 쌓여 있어서 일반 롱소드로 교체한다 한들 못 뚫는다.
'그 방법'을 써야하는 건가... 자칫 잘못하면 바로 끝장인데...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무턱대고 테오가 끝내주길 바랄 순 없어.
"모두 바짝 준비하고 있어!"
마비 검을 꼭 잡고, 최대한 높이 점프해 한번에 적들의 방어진을 살폈다.
역시 중앙에 틈이 있군.
주변에 아군이 많아 지진강타를 쓰기엔 위험했다.
시야를 확보하자 유화술로 적진 한 가운데에 들어갈 수 있었고, 순식간에 진형은 무너졌다.
"뭐, 뭐야?! 언제 여기에... 윽!"
마비 검에 맞은 안쪽 병사들은 순식간에 기절했고, 방패병의 어그로가 나에게로 끌릴 때 쯤 그림자 도약으로 쉭 빠져나왔다.
진형에 빈틈을 보인 라이칸 군대는 전멸.
그리고 그 너머로는 2차 군대가 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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