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외편(?) - 달달한 휴식 -->
52화
"미친...?"
첫패가 나누어지자마자 테이블엔 정적이 찾아왔다.
벨라의 패는 볼것도 없었다.
내게 주어진 두 카드는 에이스(A)와 킹(K), 즉 10과 11.
시작부터 합이 21이된 '블랙 잭'이었다.
[3라운드 종료 : 현우 승]
[3판 2선승제 규칙에 따라 현우 님이 승리하셨습니다]
"됐다..."
결국 이겼다.
행운의 여신이야 모르지만, 확률의 신이란 자는 확실히 내 편인 것 같다.
"말도 안돼... 내가 이걸..."
벨라는 자리에 멍하니 서있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이, 쓰러지면 안되지.
"내가 이겼으니까, 이제 내가 원하는대로 하면 되는거지?"
순식간에 테이블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나와 녀석만이 남았다.
"뭐, 뭐든지 말할테니까 제발 살려..."
"아 알았다고! 일단 첫번째 질문, 네가 거래한 그 남자는 이번 그레이튼 마을을 파괴한 조직과 연관이 있는건가?"
"...! 그걸 어떻게..."
"다 아는 수가 있지. 맞다니까 일단 됐고, 두번째. 그 남자와 조직에 대해 네가 아는대로 씨부려봐. 정보의 질이 높아질 수록 내가 널 살려줄 확률이 늘어날거야"
"아, 알았어. 내가 알기로 그 조직의 암호명은 '캣츠'. 대륙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직이고, 주기적으로 내게 차원석 무더기를 구입해가는 주요고객이지"
캣츠라... 고양이? 아님 고양이들?
"이름이야 어찌됐든, 그 조직의 목적이나 계획이 뭔지 알고 있냐?"
"그것까진 나도 잘 몰라. 아무리 연관이 있다고 해도 난 그저 판매자일 뿐이니까. 하지만 지나가던 말을 들어보니, 곧 어느 왕국에서 큰 일이 터질거라고 해."
"어느 왕국이지?"
"방금 말했잖아, 그냥 지나가던 말이라고. 정확히 어느 곳인지는 못 들었어. 하지만 말투를 들어봤을때,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아"
곧 큰 일이 터진다라.
다른 곳이 어찌되든 내 알바 아니고, 일단 남향왕국에만 얘기를 해 놔야겠군.
"좋아 그럼 마지막 질문. 여기가 그냥 너와 차원석을 거래하러 온 곳이라면, 거래소도 아닌 네 개인 카지노가 녀석들 지도에 찍혀있는 이유는 뭐지?"
"어... 음... 그건 아마, 혹시라도 내가 뒤통수 치면 여기를 털려고 그러는 걸꺼야"
"..."
저쪽에서도 별로 신뢰를 얻지 못했나 보군. 역시 공공의 적이란 놈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럼 한가지 더"
"아까 전이 마지막이라며!"
"그건 질문 말하는 거였지. 지금은 '요구'를 하는거야. 네 카지노 수입이 좀 짭짤해보이던데, 10%만 나한테 떼어주라"
"미친! 손가락 까딱 안하고 수익의 10분의 1을 떼어가겠다고?!"
벨라는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정색했지만, 나는 결코 그 정도로 물러나지 않았다.
"나 지금 명예 오지게 높아서 PK 한 번 한다고 별로 상관없거든? 하지만 넌 사망시간동안 손해가 꽤 있을거야. 그리고 말야... 네 금고, 꽤 귀중한 것처럼 감춰놨더라?"
"그건 또 어느세월에... 하아, 알았어. 떼어줄게 떼어준다고"
아싸, 정기수입 생겼다.
* * *
그렇게 테클라 시티에서의 일도 마무리되었다.
정확히 하자면 캣츠의 비밀시설을 찾아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 얘기를 할때 그들을 부를 만한 명칭도 생겼고, 그들 계획의 일부까지.
어느 왕국에 곧 큰 일이 터진다.
쿠데타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전쟁?
아니면 단어 그대로 어딘가를 폭발시킨다는 의미일 수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말하는 건지는 아직 알 방법이 없으니, 일단은 남향왕국에 회신으로 약한 경고만 해둔 상태다.
"현우 님! 무사하셨어요?"
"네, 운이 좋았죠. 자, 그럼 가도 되지?"
"무... 물론..."
나는 벨라에게 시익 웃었다. 녀석의 어깨가 부들거리는게 여기서도 보인다.
당연히 이길거라 생각했던 결투에서 역전당하고 살려달라 추태까지 보였으니 분하겠지.
어찌됐건 이젠 여기서 볼일은 없다.
카지노를 나와 우리는 잠시 로드란에서 휴식을 취했다.
"현우 님은 쉴 동안 어디 계실거에요?"
"저야 뭐, 집에 있어야죠"
"에에? 벌써 집을 사셨어요?"
"졸랐더니 로드란에서 주더라구요. 별로 썩 좋은 곳은 아니에요"
아마 지금쯤 떠날 때 남겨두었던 치열한(?) 삶의 잔해들이 잔뜩 어질러져 있을 것이다.
너덜너덜해진 허수아비라던지, 먹고 버린 체력회복 포션 병이라던지...
"저만 여관에 보내두고 혼자 집에서 쉬시려고요? 저도 같이 갈래요!"
"네, 네?!"
이분 갑자기 왜 이래? 뭐 잘못드셨나?
"저야 뭐 상관없지만..."
"그럼 가도 되는거죠?"
"...네"
왠지 여기서 딱 잘라 거절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술술 풍겨왔다.
따, 딱히 다른 이유는 없다구!
"각오하세요..."
"뭐를요?"
"뭐긴요. 혼자 사는 성인 남성의 집을 침공하기로 하셨으니, 안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될 지 모르잖아요?"
"아아, 휴지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이 여자가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제일 걱정하는 시나리오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잔뜩 쌓여있는 쓰레기를 본 그녀가 뒷목잡고 쓰러지는 것이었다.
나에 대한 깊은 불신이 생겨 여행 중에 일부러 버프를 안 준다던지...
헉! 생각해보니 그냥 파티를 떠나겠다고 할 수도 있잖아!
막아야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가 저 문을 열게 해서는 안된다.
"우와, 여기가 현우 님 집이에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네요."
"하하하... 그나저나 우리, 집 말고 다른 데 바람쐬러 갈래요?"
"나중에 가요. 오늘은 지쳐서 쉬고 싶어요"
위험해.
내가 돌처럼 굳어있던 잠깐의 찰나, 유희 씨가 마당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안돼에에!"
손을 뻗고 달려들어 그녀를 저지하려 했지만, 불행히도 마당에 놓여있던 돌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안돼, 유희 씨가 저 문을 열면...
"깜짝야, 이게 뭐에요?"
망했다.
이제 끝났어. 다 끝났다고 시발...
"안에 청소부도 있었어요? 우와 신기해!"
"...청소부?"
잠깐, 그 말은 지금 내 집이 안전하다는 거?
"돌아오셨어요? 집이 하도 어질러져 있길래 마침 청소 끝내고 가는 길입니다. 그럼, 두분 오붓한 시간 보내세요~"
"미친, 청소부까지 보내주시다니..."
내가 동성애자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국왕에게 뽀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지금 내 집은 방금 막 새단장 했다 해도 믿을 정도로 깨끗이 청소된 상태였다.
물론 허수아비는 어디 구석에 잘 모셔져 있고.
"에이. 좋은 집을 왜 못들어오게 하셨어요. 이렇게 깨끗한 곳을..."
"...하, 하하!"
원인이 어찌됐든 현재만 좋으면 되지 뭐.
나도 몰랐던 깜짝 청소 서비스 덕분에, 그녀와 나는 사흘 내내 함께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안 알려 줄건데?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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