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상(幻想)의 세계로! -->
50화
저 상인새끼의 이름이 벨라인가.
주변에선 온통 환호성이 들려오고, 그런 게 당연하다는 듯 벨라는 웃으며 진행중이던 룰렛 게임에 난입했다.
"저기 괜찮다면 지금 게임에 참여해도 좋은 가?"
"물론입니다! 자, 배팅하시죠!"
"안그래도 지금 막 크게 따온 채라 행운이 상당하네. 32에 올인!"
"우오오오!"
둥.
테이블의 격자 중 32라고 쓰여진 칸에 칩이 산더미같이 쌓였다.
미친, 방금도 존나 많이 따와놓고 그걸 전부 여기에 걸겠다고?
너 그러다가 전부 잃는다. 나도 어제 32에다가 걸었다가 다 탕진했...
"32!!! 32 나왔습니다!! 행운의 신이 함께 하는 벨라님께 박수를!"
짝짝짝짝!!!
"...시발"
왜 어제 이시간에는 32가 안 나왔던 건데?!
벨라는 흐뭇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쌓여있던 칩을 싹슬이 해갔고,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유유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참! 이럴때가 아니지. 빨리 쫓아가요"
녀석은 올때보다 몇십배는 불어나 있는 칩들을 전부 골드로 교환한 뒤 카지노를 나와 밖에 서 있던 경호원들과 합류했다.
카운터에서 수상하게 쳐다보지 않도록 계속 주시하다가 시야에서 사라질때쯤 천천히 그들을 쫓아갔다.
"좋아, 이제 슬슬 꼬리를 드러내는 구나..."
상인 일행은 또다시 걷다가 해안가 근처의 작은 거래소로 들어갔다.
아마 이곳에서 지금까지 모아온 차원석들을 처분하는 거겠지.
"계속 들어가보죠"
거래소 자체는 누구에게나 열린공간.
우리는 아주 당당하게 상인 일행의 뒤를 밟아 거래소 안으로 들어갔다.
상인들이 물건을 내놓고 소비자가 가서 사 가는 딱히 특징 잡을 만한 것도 없는 평범한 곳이었다.
그 중 벨라는 경호원들을 문 밖에 남겨둔 채 '예약석'이라고 쓰여져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평범하게 거래하지는 않는구나.
"어쩌죠? 여기서 대놓고 들어갈수도 없고"
"기다려 보세요. 다 방법이 있으니까"
방법이 없어 고민하고 있는 유희 씨에게 나는 천장에 설치된 환풍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에에, 저건..."
"종이접기도 아니고, 층과 층 사이에 공간이 없을리가 있겠습니까"
"영화에서나 나오는 걸 하자구요? 우린 점프한다고 저기까지 닿을 리가..."
"점프 안할거니까 걱정 안하셔도 되요. 일단 따라오세요"
눈치 안보이게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야한다.
화장실로 가는 복도 사이에는 안쪽으로 꺾인 작은 틈이 있는데, 그곳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저, 저기... 여기 너무 좁지 않나요...?"
"저도 최대한 벽에 바짝 붙은 거라구요!"
사각지대가 너무 좁았기 때문에, 지금 그녀와 나는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있었다.
코앞에서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걱정마세요. 좀 있으면 공간이 생길거에요. 꽉잡아요!"
생기길 바래야지.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림자도약을 시전했다. 천장을 뚫고 나와 층과 층 사이의 작은 틈새로 올라올 수 있었다.
"으에, 더 좁잖아요!"
"이크. 그렇네요..."
역시 환풍통로라 그런지 가로세로 폭이 0.6미터 정도밖에 안되었다.
몸을 완전히 수그려야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그래도 그림자 도약 스킬을 만들때 개발자가 꽤 열심히 했는지, 도착지점에 장애물이 있어도 어느정도 위치보정을 해 준다.
끼임 버그가 발생하기 쉬운 스킬인 만큼 보정폭이 상당히 넓었다.
처음에 내 바로 왼쪽에 붙어 있던 유희 씨는 지금 내 뒤쪽에 있었고, 서있었던 자세는 좁은 환풍통로에 따라 자동으로 수그린 자세로 변경되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어디에 끼여서 의문사 당하는 일은 없겠네.
"일단 아까 저희가 앞에 예약실이 있었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두번 꺾었으니까, 왼쪽으로 한번 꺾은 다음에 조금 가서 오른쪽으로 한 번 꺾으면 될거에요"
맵을 펴 놓고 방향을 찾아가며 환풍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자, 어느새 녀석들이 있는 방 바로 위까지 찾아올 수 있었다.
"여긴가요?"
"네, 여기서부턴 정말 조용히 하셔야되요"
구멍이 뚫린 환풍구 부분부터는 폭이 조금 넓어져, 나와 그녀가 같이 아랫상황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물건은 어떻게 됐지?"
"늘 그렇듯 최상품으로 준비했습죠. 자, 이 안에 들어있습니다"
"확인했네. 이래서 암시장이 쓸만하다니까."
"헤헷, 과찬이십니다. 저... 그래서 비용은..."
"여기있다. 다섯 장이면 됐지?"
"충분하고도 남죠"
반대쪽에 앉아있는 검은 옷차림의 남자에게 차원석을 팔아넘기는 듯 했다.
오우야, 저 정도 상자면 꽤 많이 들어있을텐데... 저게 다 얼마야.
다섯 장이라는 건 얼마를 의미하는 걸까? 5십만? 5백만?
경호원은 밖에 있고, 방 안쪽에는 완벽한 방음부스가 지원된다.
지금이 기회다.
"유희 씨는 일단 여기 계세요"
"아니요, 저도 같이 갈래요. 나중에 전 어떻게 내려주실려고 그래요?"
"아... 그렇긴 하겠구나. 그럼 절 잡으세요"
꼬옥.
갑자기 그녀가 내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뭐, 뭐하시는 거에요?!"
"밖에 내려가면 현우님 손 써야되잖아요. 어차피 내려가서 바로 놓으면 되는데, 내려갈때까지만 잠깐 잡고 있을게요"
"...네, 마음대로 하세요"
듣고보니 그렇기도 하다만...
나는 천장에 붙어있던 환풍구 판을 뜯어내 한손에 쥐고, 반댓속으로는 장비가방을 연 채로 그림자 도약으로 내려갔다.
"방금 무슨 소리가... 헉!"
갑자기 나타난 우리를 보고 녀석들이 당황할때, 재빨리 검은 옷의 남자 머리 위로 환풍구 판을 내리찍었다.
남자가 잠시동안 정신을 잃은 순간 그를 벨라에게로 집어던졌고 재빨리 가방에서 단검 두개를 꺼내 녀석들의 목에 하나씩 들이댔다.
"손목 한 번 트는 것 만으로 너희 목을 날려줄 수 있어. 그러니 조심해"
"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카지노 때문에 왔다면 그래, 사실 전부 다 사기였소! 블랙잭 때는 미리 카드 순서를 봐 뒀었고 룰렛을 돌릴때는 32에 자석이 붙어있었소! 전부 인정할테니 목숨만은..."
"...?"
발뺌하려는 걸까, 아니면 그냥 생각을 못할 정도로 멍청한 건가.
왠지 후자라고 믿고 싶었다.
"제, 제발 살려주시오..."
"됐으니까 일단 닥치고, 나 기억나지?"
그제서야 나는 푹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들어 벨라와 눈을 마주쳤다.
"헉! 너, 넌 그 때 그..."
"그때처럼 호되게 당하기 싫으면 일단 내가 말하는 거에 제대로 대답하는 게 좋...으윽!"
뒤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손길이 날 순식간에 제압해 바닥에 쓰러트렸다.
그제서야 벨라가 발밑으로 누르고 있던 붉은색 버튼이 보였다.
제기랄!
"진정하라구. 아가씨는 순순히 손 들면 저 녀석처럼 대우하진 않을게"
상황의 주도권을 장악한 벨라가 낄낄 거리며 웃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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