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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력 1로 랭커 까지-45화 (46/117)

<-- 당당한 침입 -->

45화

당연한 소리지만, VGN을 포함한 각종 워랜드 커뮤니티는 발칵 뒤집혔다.

출시 직후 참여유저가 없어 여러 마을을 잃은 이벤트 끝에 그레이튼 마을은 완벽한 시설을 갖춘 최종 방어선이나 다름없었다.

웬만한 왕성의 성벽에 비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한 웅장한 장벽은 근 1년간 모든 몬스터를 막아주었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말이다.

[시발 대체 뭐하자는건데? 화살도 안박히고 저번 3차웨이브 때도 그렇더니. 개발자들 진짜 일 안하냐?]

[그래도 3차 웨이브 때는 누가 와서 막아주긴 했잖슴. 이번에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하이패스로 밀렸지]

[그냥 걔네들이 달려와서 장벽 쿵 하고 박으니까 장벽 부서짐 ㅋㅋㅋㅋㅋ]

[존@나 어이없네]

워랜진에 올라와 있는 글들은 대부분 이번 이벤트에 참가했다가 개죽음을 당한 유저들이었다.

VGN에서는 그런 유저들 일부를 초청해서 당시 상황을 취재하고 있고, 역시 개발사에선 버그가 아니라며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한다.

버그가 아닌 건 맞다만... 이렇게 되면 일이 꽤 커질텐데.

[근데 갑자기 궁금한 건데, 글튼 마을 폭파됐으면 그 안쪽에 있던 마을까지 다 터질텐데 왜 안 그랬지? 걔네들 어디감?]

[그러게?]

[ㅁㄹ 또 버그났나보지 시발]

다행히 이번엔 목격자가 없어 사건의 결말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레이튼 마을 안쪽의 로세인 마을에 찾아가 미리 말해두었으니, 앞으론 그곳이 최종 방어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벌써 장벽 공사를 시작하고 있었고, 중앙왕국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받아 그레이튼보다도 더 높은 방어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게 지도에서 두 개의 점이 지워졌다.

*        *       *

우리가 다음으로 선택한 곳은 중앙왕국 북쪽에 찍혀있는 점이었다.

아스가니아 대륙의 왕국은 북향왕국이 따로 없고 북쪽 영토는 중앙왕국과 동향, 서향왕국이 나눠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가는 곳도 지구로 따지자면 북극...은 좀 무리수고 그 밑의 시베리아 같은 지방이다.

결론은 오지게 춥다는 거다.

저번에 내가 갔었던 메멘텔 산맥보다는 덜 추울 것이다.

아무리 위도 차이가 있다고 해도 메멘텔 정상은 설정상 에베레스트보다도 높은 곳이었으니까.

거기서 보스 잡겠다고 방한복 벗었다가 추워서 정말 뒤질뻔했던게 생각난다.

이번엔 방한복을 입을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맨몸으로 버틸만한 날씨도 아니기에 추위면역포션을 많이 구비해 두었다.

어쨌거나, 유희 씨랑 이쪽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지금쯤이면 올 시간이다.

"현우 님!!"

"아, 오셨어요?"

"네. 많이 늦었죠?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그럼 바로 갈까요?"

메멘텔 북쪽의 텔레포트 포인트는 아스가니아 최북단 마을로 알려진 릭스 마을 중앙에 있었다.

지도 상의 점은 그보다도 더 북쪽이었기에, 이동수단을 빌려 핑이 찍혀있는 곳으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개썰매요?"

"네. 극지방 명물이잖아요"

구하기도 쉽고 성능도 좋고 가성비도 만점. 이 정도면 최고의 선택 아니겠어?

유희 씨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날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기어코 개썰매를 빌렸다.

"자자, 빨리 타세요! 출발합니다!"

썰매 앞자리에 앉아 지도에 위치를 설정하면 개들이 알아서 썰매를 끌어주...는 줄 알았는데.

"아이 씨. 빨리 좀 움직이라고 이 멍청한 개새끼들아!"

"멍멍! 멍멍!"

"왈왈왈!"

"..."

자리에 앉아 위치를 찍어줬는데도 이 녀석들은 움직일 생각을 도통 안한다.

문득 이 썰매 앞에 매달려 있는 개가 훈련받은 썰매개가 아닌, 그냥 집에서 키우는 멍멍이를 데려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가격이 너무 착하다 했어!

"으으, 당했다!!"

"저... 그럼 그냥 걸어가면 안될까요?"

"역시 그래야 되나봐요... 으아아아아!!!"

돈이 아까운 건 아니었지만, 사기를 당하니 기분이 정말 뭣 같다.

*         *        *

릭스 마을 북쪽은 딱히 지형이 험하거나 눈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조금 바람이 부는 정도였고, 뒤질것 같이 추울 뿐이었다.

딱다닥. 따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이빨이 저절로 갈렸다.

추, 추위면역포션이 필요해...

"유, 유희 씨는 혹시 지금 괜찮으세요? 며, 면역 포션 좀 드릴까요?"

"가, 감사합니다!!"

확실히 그녀도 추웠던 모양이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추위 면역 포션 두 병을 꺼내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당분간은 괜찮을 거에요"

추위 면역이라고 해도 추위 효과를 완전히 없애주진 않지만, HP가 1이라고 해도 버틸 수는 있을 정도로 줄여준다.

혹한기 훈련 같은 거 할 때 이런 거 있으면 얼마나 좋아!

어쨌든 면역 포션을 마시니 정말 추위가 견딜만 해졌다.

아까는 정말 맨몸으로 에베레스트에 떨어진 느낌이었다면, 이젠 평범한 가을 말기의 느낌 밖에 안 난다.

자연스럽게 몸은 진정되었고, 우린 조금 더 편하게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지도가 맞다면 여기 쯤에 있을 텐데..."

"어? 혹시 저거 아닐까요?"

유희 씨가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고, 정말 그 앞에는 무언가 천막 같은 게 설치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저기가 맞는 거 같은데.

"일단 저번처럼 보이자마자 화살이 날아올지도 모르니, 이쯤에다가 텐트를 쳐두고 어떻게 되는 지 확인해보도록 하죠"

근처 땅바닥에 쌓인 눈을 치우고 배낭에서 텐트를 꺼내 쳤다.

그리고 나서 미리 준비했던 망원경을 꺼내 살피려고 하는데, 천막 무리 쪽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설마 벌써 눈치챈 건가?

"유희 씨는 일단 안에 들어가 계세요. 제가 한번 나가서 알아보도록 하죠"

나는 조심스레 단검을 쥐고는 손바닥을 등뒤로 감춰 다가오는 사람을 기다렸다.

이내 그 남자가 정확하게 우리 텐트를 향해 다가왔다.

"신원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누구시죠?"

"그건 제가 먼저 묻고 싶은데요. 여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는 데 저 천막은 대체 뭡니까?"

질문에 되물음으로 답하자 남자는 잠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킬라 왕국 군대가 혹한기 훈련중입니다. 제한 구역이니 돌아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피식.

수고 했어, 너네 들켰다.

차라리 구라를 칠 거라면 중앙왕국 군대라고 하는 게 오히려 먹힐 뻔 했다.

행여라도 중앙왕국 관계자가 왔을 까봐 다른 나라인 남향왕국이라고 한 것 같은데, 그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지.

"다행이네요. 제가 마침 에킬라 최고 기밀권한 소유자입니다"

당당히 웃으며 상태창을 보여주자, 남자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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