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검을 쓰라고? -->
31화
"당신은 누구죠...?"
"글쎄다. 너한테 도움을 줄 사람? 지금 안으로 들어오면 알려줄게. 뭐, 관심없으면 그냥 가도 되고"
[정체모를 으스스한 건물의 입장이 가능합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분위기를 보아하니, 승현이와 수아는 아직까지 이 메세지조차 보지 못한 듯 했다.
확실히 저 뒤에는 뭔가가 있다.
그리고 지금은 나만 들어갈 수 있다.
대체 뭘까?
"너희는 먼저 여관에 가 있어. 난 한번 들어가볼게"
"무슨 소리에요? 갑자기 여기를 왜... 문도 잠겨있는데"
그 말을 들은 남자가 갑자기 문을 주먹으로 쾅 때렸고, 어설프게 잠겨있던 자물쇠는 힘없이 박살났다.
"자, 이제 됐지?"
물론 이것도 저 둘에겐 보이지 않았나보다.
들어가봐야한다. 아무런 근거가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굳게 닫혔던 건물의 문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건물은 말그대로 날 삼켜버렸다.
* * *
"으으, 여긴...?"
"눈이나 제대로 떠 보고 물어보지 그러냐. 좀 익숙한 공간처럼 생겼지 않아?"
한쪽 구석으로 놓여있는 갖가지 종류의 무기들. 포션이나 무언가가 잔뜩 쌓여있을 듯한 큰 벽장.
그리고 정가운데에 놓여있는 허수아비.
"수련장이군요"
"입문을 가볍게 통과했으니 이제는 초급단계로 들어서야지. 통과하는 법은 저번이랑 똑같다."
"저번이라 하면... 허수아비 박살내는 거요?"
"그래.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처럼 쉽지는 않을 거야"
허수아비의 하단이 갑자기 둘로 쪼개졌다!
쪼개진 부분은 계속해서 늘어나더니, 갑자기 관절이 형성되어 다리가 만들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앙에 수평으로 박혀 있던 짚더미에도 관절이 생기면서 팔까지 생긴 것이다.
거대한 짚더미로 만들어진 삐쩍마른 '인간형' 허수아비가 만들어졌다.
"못생겼지? 나도 알아. 손재주가 없어서 저렇게 밖에 못 만들겠더라고... 젠장"
"..."
님같이 생겼어요 라고 말했다간 쳐맞겠지?
저 허수아비도 언뜻보면 한대 치면 쓰러질 것처럼 허술하게 생겼지만, 겉모습처럼 쉽게 쓰러지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입문 수련장에 놓여 있던 허수아비도 그렇게 노력해서 겨우 진동수를 맞췄는데, 그보다 한 단계 위인 초급은 어련할까.
허수아비는 절대 내게 선제공격을 하지 않았다.
상대를 때려눕히겠다는 전투의욕 보다는, 그저 대련을 위해 싸우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입문 수련장의 허수아비도 얄미운 표정이 그려져 연습생을 도발하는 마당에 이렇게 평화주의적인 초급 허수아비가 있다니!
예컨데, 돌아가신 마하트마 간디께서도 보신다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가실 그런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난 안봐준다.
"하압!"
며칠동안 굶은 것처럼 축 늘어져 있는 허수아비에게 달라가며 빠르게 진동타격을 발동했다.
그런데...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으악!"
매초마다, 아니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의 가장 작은 단위보다도 더 빠르게 진동수가 울리고 있었다.
아주 잠깐만 발동했을 뿐인데도 머리가 깨질 듯이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이미 대련이 시작된 상황에서 허수아비는 전처럼 평화적이지 않았다.
* * *
가상현실게임 규정에 따라 워랜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방금 그것은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다.
시스템은 그저 저 허수아비의 진동수를 그대로 전달했을 뿐.
단지 진동수가 너무 빨랐고, 그걸 일일이 인식하려 한 내 뇌에 과부하가 걸렸을 뿐이다.
따라서 이건 게임이 고통을 느끼게 한 게 아니라, 내 머리가 저 혼자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다.
바보 같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깼냐?"
"저 방금 죽은 거죠? 그런데 왜 벌써 다시..."
"말 안해줬었나. 초급수련장부터는 정신적인 공간에서 수련하게 돼. 그래서 죽어도 다시 바로 리스폰되는거지"
"아아"
예전의 나처럼 무리하다가 죽는 사람들을 대비해서 이렇게 해둔 건가.
"잠깐. 그러면 수료하기 전까진 수련장에서 나갈 수 없는 건가요?"
"초급 수련장만 그런거야. 어차피 금방 끝낼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니 대체 이런 걸 어떻게 금방 끝낸다는겁니까?
'입문 수련장의 허수아비에다 팔다리만 달은 거니까 입문수련장 통과자들은 금방 깰 수 있을거야!' 같은 마인드로 만든 건가.
그렇다고 해도 진동수를 이렇게 높힌 건 너무 고의적인데?
하지만 내가 여기서 뭐라고 징징대던 간에 이 녀석을 박살내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후우, 그래. 이럴 바에는 몇번이라도 계속 부딪혀보자. 계속해서 맞붙다 보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으윽!"
안 좋은 소식이 생겼다.
허수아비를 향해 되도 않는 공격을 계속해서 하다보니, 끝내 박살을 내고야 말았다.
문제는 그게 허수아비가 아니라, 내 검이라는 점이었다.
"오우, 저런. 검이 부러졌군"
"초보자 아이템이라 내구도 무한일텐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쨌든 부러졌고, 못 쓰잖아. 그래서 말하는 건데, 저기 있는 무기들을 써보는 건 어때?"
교관이 벽쪽에 잔뜩 걸려있는 무기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 그곳에는 사람이 쥘 수 있는 거의 모든 무기들이 걸려있었다.
기본적인 롱소드부터 시작해서, 길이 별로 단검, 대검. 종류도 양날검, 레이피어, 에스톡 등등 다양했다.
당연히 검 종류 무기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만약 롱소드가 아닌 다른 종류의 무기를 선택해서 저 허수아비를 박살낸다면, 자네의 검을 복구시켜줌과 동시에 그 무기를 주지. 어떤가? 한번 도전해 볼텐가?"
[퀘스트 : 초급수련장]
[난이도 : D]
[수련장의 무기를 사용하여 허수아비를 처치하라. 단, 원래 사용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무기 제외]
[보상: 수련장의 무기]
고작 수련장에서 쓰는 무기 쥐어주고 보상으로 준다 하면 이게 뭔 개소린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초급수련장은 커녕 입문 수련장조차 수료해보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그럴 것이다.
실제로 이곳의 무기들은 상당히 질이 좋은 편이었다.
왕국 정예병들이 사용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남작 이상의 작위를 가진 사람들의 사병들이 쓰는 정도는 된다. 능력치를 보면 그랬다.
게다가 내가 원래 쓰던 무기는 입문 수련장의 죽도와 비슷한 수준이라 알려진 초보자의 검이니, 사실상 나에게는 어떻게 해도 이득이었다.
"음..."
나는 무기창고 앞에서 쓸 만한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스태프나 둔기는 당연히 엿이고, 롱소드보다 규격이 큰 장검이나 대검도 쓰기엔 무리였다.
만약에 활을 고른다면 앞으로 두고두고 용이하게 쓰일 테지만, 지금 당장 저 허수아비를 상대하자니 막막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단검 밖에 없네"
좋아, 결정했다.
========== 작품 후기 ==========
이번 무기는 단검! 너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