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검을 쓰라고? -->
30화
"쫓아가야돼!"
지금 이중에서 저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른 건 나 밖에 없다.
아직 90타 스택이 남아 있으니, 쫓아가서 한 겹씩 벗기면 된다.
나는 빠른 속도로 골렘을 추격했다.
그림자 도약까지 사용하자 바로 코앞까지 따라올 수 있었고, 올라타는 것 까지는 골렘과 벌어져 있는 약간의 거리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최대한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타다다다다다.
빠른 속도로 HP보호막이 훅훅 벗겨졌지만, 달리면서 검까지 쉬지 않고 휘두르자니 체력이 남아나지 않았다.
"허억....허억..."
그렇다고 해도 달리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계속 달리지 않으면 저 골렘은 그대로 성벽에 부딪힐 것이고, 그럼 로드란은 최후의 방어책을 잃게 된다.
"끄으으아아아아아!"
골렘이 내 공격을 회피하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보호막을 벗겨내는 건 의외로 빨리 끝났다.
문제는, HP 보호막을 전부 벗겨낸 뒤 갑자기 꼬여버린 내 발걸음이었다.
툭.
어디 돌멩이에라도 걸렸는지 내 몸은 빠르게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아, 안돼...
이 속도로 땅을 구른다면 부상도 없이 그냥 바로 사망이다.
거의 다 끝났는데, 이대로 죽어버릴 순 없다.
죽더라도 저 골렘은 박살내 놓고 죽자. 어차피 몇시간 기다렸다가 리스폰 되면 그만이다.
땅에 얼굴이 닿기 직전, 나는 그림자 도약을 사용해 골렘을 다시 추격했다.
칼을 휘두를 사정거리는 안 되었지만 스킬 사정거리였기에 바로 유화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위치상 골렘 뒤 쪽에 있었기에 유화술을 사용하자 골렘 앞쪽으로 이동했고, 안정적으로 녀석에게 올라탔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
"됐다...!"
성벽에 충돌하기 직전.
HP가 바닥난 골렘이 갑자기 멈춰섰다. 당연한 소리지만 게임이니까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녀석에게 새겨져 있었던 드래곤 언어 중에는 자폭기능 같은 게 있었나보다.
그대로 멈춰선 뒤 골렘은 폭발해버렸고, 당연히 나는 그 폭발에 휘말려 사망했다.
* * *
성벽 앞 100미터에 있던 모든 대지가 불길에 휩싸였다.
다행히 직격으로 부딪히지 않아 성벽은 멀쩡했지만, 그 앞에 있던 모든 것들은 다 증발해버렸다.
1천 명에 달하던 포도당과 나야 플레이어니 다시 부활했지만, 앞에서 우리와 같이 싸웠던 군대는 전멸했다.
사실상 남향왕국 입장에선 큰 손해일 것이다.
"죄송합니다..."
사실상 무의미하게 왕국군 군대를 끌고 나갔다가 전멸시킨 게 나다.
지금까지의 신뢰를 모두 잃고 쫓겨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왕은 내게 너무 친절했다.
"아닐세. 그래도 자네 덕분에 성벽을 지켰지 않은가? 그렇지 않았다면 로드란은 벌써 함락되었을 걸세"
"그 내부첩자 녀석은 깨어났습니까?"
"그렇긴 한데 아직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네. 레버튼에서 파견한 군대라고는 하지만, 정작 레버튼에서는 자신들이 보낸 게 아니라고 하고 있네"
"속이고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한밤중에 몰래 급습해놓고 실패한뒤에 당당히 '내가 그랬소!'하는 놈이 어딨겠어?
"어쩌면 제3자가 레버튼과의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만든 계략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쪽에서 보낸 군대라는 것이 확실히 밝혀지면, 보복을 위해서 모든 군대를 총동원할 것이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뭐 어차피 난 정치라던가 그런거는 쥐뿔도 모르니 가만히 짜져있어야지.
"그나저나 자네, 아주 큰 공을 세웠네. 혹시라도 뭐 필요한 게 있나? 에킬라의 이름을 걸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지원해주겠네"
"에, 저한테는 딱히 없습니다만... 그렇다면 한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지. 무엇인가?"
"그게..."
빌수 있는 소원 한 가지를 갔다가 '소원 백 개 들어주세요!'를 비는 초딩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내가 받을만한 지원은 딱히 없었다.
길드나 그런 건 구해준다고 해도 거절할 거고, 대놓고 레어템이나 그런 걸 요청하기도 뭐 하니까.
그래서, 그냥 포도당을 남향왕국에 맡겼다.
"자네의 사병을 훈련시켜달라는 건가?"
"네. 정예병사라 생각하시고 훈련시켜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한 명당 최소 150레벨은 올릴 수 있도록요."
"좋네. 그나저나 포도당이라니... 신박한 이름이군 그래"
그냥 솔직히 병신같다고 하셔도 되는데...
어쨌든 그렇게 사건도 일단락 되었겠다, 사병단은 맡겨둔 채 우리 일행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다.
원래 우리가 가려던 곳, '미개척지'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곳이 완전히 야생 생태계인 것도 아니니, 안에 있던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할 계획이었다.
"흐아, 거기서 한 번 죽는 바람에 레벨이 깎였네요"
"미안하다... 내가 골렘 같은 게 있는 줄 모르고 너네를 거기 데려갔네"
"아녜요, 괜찮아요. 어차피 그거 덕분에 남향왕국이랑 친밀도도 쌓였고, 오히려 더 이득이죠!"
"맞아 맞아. 한번 죽으면 뭐 어때? 다시 사냥해서 레벨 올리면 되지!"
다행히도 수아와 승현 남매는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생각해보니, 이젠 하도 마차에 많이 타서 그런지 이리 덜컹거리는 데도 잠이 잘만 온다.
어제 밤새 공성전 하느라 피곤했는데, 지금이라도 좀 잘ㄲ...
쿵!
"도착했습니다! 내리세요!"
아이씨, 한숨도 못자게 하냐...
어느새 우리는 미개척지의 한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도시라고 하기엔 조금 작고, 그냥 마을이라는 표현이 딱 적절한 곳.
"여관 잡고, 바로 사냥부터 시작할까요?"
"그래. 레벨 복구 좀 하자"
둘을 데리고 여관으로 가려던 중, 나는 맞은 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낡고 녹슨 채 헐렁한 자물쇠로 잠겨있는 건물.
그 건물 앞에 마치 문지기라도 되듯 한 사람이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저기는 뭐하는 곳일까. 저 사람은 또 뭐하는 사람이고?"
"네? 무슨 사람이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저 문 앞에 기대 있는 사람 안 보여?"
"나도 안 보이는데? 현우 오빠 뭘 보고 있는 거야?"
아니. 저기 저렇게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이 안 보인다고?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 일단 가까이서 보자.
길을 건너 그 낡은 건물 앞으로 왔고, 승현이와 수아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따라왔다
"자, 봐봐! 여기 바로 앞에 있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거긴 아무것도 없는데"
"형, 혹시 형한테만 버그 걸린게 아닐까요? 저도 안 보여요"
버그 잔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또렷한데...
그때, 그 남자가 갑자기 정면을 올려다 보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백날을 말해봐야 소용없을걸. 너한테만 보이는 거니까"
"...!"
이사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