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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력 1로 랭커 까지-27화 (2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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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저 새끼의 띨빵함을 내가 너무 얕봤다. 아니 설마 진짜로 결투를 할 줄은 몰랐지.

그리고, 지금 제대로 망한 것 같다.

[1 대 1 결투가 시작됩니다]

[니_토(Lv.312) VS 현우(Lv.75)]

"하, 누가 누구보고 좆밥이래? 니 레벨은 보고 한 소리냐?"

"미친... 랭커 였어?!"

그러고보니 저 니_토라는 닉네임, 예전에도 들어봤던 거 같다

중앙왕국 연회에서 술주정 부리다가 쫓겨난 최초의 유저로서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상짓은 여전하구나...

좋거나 싫거나 결투는 시작됐다. 어차피 져도 상관없다. 사망 패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지는 게 당연하니까.

이 미친놈이 걸어놓은 조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결투 규칙 : 승자독식]

[이긴 자만이 살아남아 영광을 누리고, 패배한 자는 모든 것을 잃습니다.

승자에게 패자의 모든 아이템과 버프 효과가 넘어갑니다]

결투의 리스크가 너무 커 계정 삭제빵을 할때가 아니면 절대 걸지 않는다는 규칙, 승자독식을 멋대로 걸어놓은 것이다.

가진 무기라고 해봤자 1렙 때 받은 초보자의 검 뿐이지만, 그 외에 잃는 것이 너무나도 심했다.

특히 바람 기사의 돌풍 갑옷은 뺏기면 두번 다시 구할 수 없는 레어아이템이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뺏길 수 없었다.

"카악~ 퉤! 지금이라도 싹싹 빌면서 이거 핥아먹으면 용서해줄게. 어떡할래? 거절하면 바로 죽음이야"

"통하지도 않는 구라까고 자빠졌네. 왜, 질 거 같으니까 플래그라도 세워두는 거냐?"

이미 결투가 시작된 이상 싸움을 건 쪽이든 수락한 쪽이든 취소할 수 없다.

그냥 내가 무서워서 짖어대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저러는 거다.

물론 나는 응해줄 생각이 없지만.

"쫄지 말고 그냥 덤벼. 스치지도 못하겠지만"

쉬지 않고 도발을 해서 미리 판단력을 흐리게 할 목적도 있었지만, 실제로 맞는 말이기도 했다.

아무리 레벨차이가 4배 가량 난다고는 하지만, 나는 75라는 레벨을 올라오며 모든 포인트를 민첩에 분배한 사람이다.

거기에 수련장 노가다와 장비 보너스까지 합쳐졌으니, 아무리 랭커라고 해도 성기사인 녀석에 비해 속도에선 절대 딸리지 않을 것이다.

"으아아! 죽여버리겠어!"

잔뜩 빡친 채 눈돌아가서 달려오는데, 성기사 답게 정말 느리다.

살찐 뱃살을 출렁거리며 다가오는 게 마치 스폰지밥의 뚱이를 보는 것 같다.

물론 절대적으로 느렸다는 건 아니다. 단지, 내눈에 그렇게 보였다.

니토가 내게 검을 휘둘렀다.

사정거리는 꽤 길어보였지만 수평으로 그어서,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고도 남았다.

"진짜 빈틈 투성이네. 대체 랭커는 어떻게 찍은 거냐?"

검을 수그려 피한뒤 겨드랑이 사이를 슥 그었다.

심지어 방어구도 없는 부분이라 치명타가 터졌고, 녀석은 잠시동안 경직 상태가 되었다.

"뭐야. 간지럽지도 않구만. 때리고 있는 거 맞냐?"

"아닌데"

자기가 너무 세서 딜이 안 박힌다고 생각하는 건가.

굳이 아니라고 대답한 이유는, 혹시라도 이게 뭔 개소린지 고민하다가 뇌 정지 올 지도 몰라서였다.

잠깐의 경직시간 동안 나는 10스택을 쌓았다.

경직이 풀리고 니토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지만, 유화술로 쉽게 피한 뒤 또 3초동안 20스택까지 올렸다.

"으윽, 이 미꾸라지 같은 새끼가!"

녀석을 거의 농락하다시피 실실 웃으며 그림자 도약으로 거리를 벌렸다.

이 짓도 하다보니 은근 재밌다.

내가 수십대를 때릴 동안 녀석은 날 단 한 대도 때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입힌 데미지는 전체 HP의 1%도 되지 않기에 별 생각 없어보이는 듯 했다.

덕분에 살짝 방심하는 듯 했고.

좋아, 그러다가 풀스택 쌓여서 한방 컷 나면 참 볼만하겠어.

75레벨에 새로생긴 패시브 영혼의 울림 덕분에, 최대 스택이 쌓인다면 방어력이 어떻든 간에 무조건 한 대다.

꾸준히 검을 휘두르는 내내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50타, 60타, 70타.

시간이 갈 수록 난 거의 폭주하다시피 했다.

200을 훌쩍 넘어버린 민첩 덕분에 난 깃털처럼 가벼웠고, 예전보다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달리다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는 움직임도 가능해졌다.

거기에 그림자 도약과 유화술까지 합쳐지니, 니토는 완전히 죽을 맛이겠지.

"으어어, 어지러워..."

그래, 계속 그러고 있어라.

어느덧 80타. 벌써부터 녀석의 HP는 반 정도 닳아 있었다.

그렇게 계속 때리고 89타 째가 되던 그 순간.

쿠구구궁.

"뭐, 뭐야?!"

갑자기 땅이 지진난 듯 흔들리며, 니토의 주변으로 거대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랭커를 얕보자 마라. 속도에서 딸린다면, 스킬로 찍어눌러 주겠다!"

기류가 폭탄처럼 퍼지며, 녀석의 HP가 순식간에 100%로 차올랐다.

"으윽!"

기류 때문에 몸이 멀찌감찌 날라가 쓰러졌다.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훗, 그러게 처음부터 나대지 말았어야지. 슬슬 끝내자"

니토가 천천히 내게 걸어와, 검을 거꾸로 쥐고 세게 내리쳤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난 그걸 순순히 맞아주겠다고 한 적 없거든?

"뭐, 뭐야?! 그새 어디 간 거지?"

유화술로 니토의 뒤로 온 뒤, 왼쪽 귀 바로 옆에다 대고 속삭였다.

"느려"

"히익!"

약점을 찌른 것도 아닌데 지혼자 쫄아서 굳어버렸다.

그틈을 타 90타로 세번 베자, 어느새 딸피가 되어버린 우리의 니토 씨.

그러자 쫄리긴 했는 지 즉각 방어스킬을 써버렸다.

[니토 님이 평화의 신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방어력이 10,000,000,000으로 증가합니다]

"훗. 이 정도면 너의 그 센 공격도 소용 없을 걸!"

확실히 방어력이 저정도면 1의 데미지도 안 들어가는 게 정상이다.

근데 말이지. 네가 아직 모르는 게 있어.

이미 영혼의 울림이 발동됐단다.

"그딴 거 안통해 병신아"

"무, 무슨..."

스윽.

니토의 HP가 0이 되었다.

*       *       *

결투는 종료되었고, 우린 다시 마차 앞으로 돌아왔다.

[승리하셨습니다!]

[결투 규칙 승자독식 에 따라 현우님이 니토님의 아이템을 전부 차지합니다]

"마, 말도 안돼... 여기 지른 돈이 얼만데... 고작 저딴 뉴비한테"

"그러게 실력이 안되면 좀 짜져 있지 그랬냐. 앞으론 현질 같은 거 하지마. 돈 낭비야"

아이템도 없는 녀석의 엉덩이를 뻥 걷어차버리자, 질질짜며 도망가는 모습이 참 가관이었다.

"형! 어떻게 됐어요? 형이 이긴거에요?"

"응, 진상고객 참교육 해주고 왔다."

"오오! 역시 현우 오빠! 잘했어"

수아가 엄지를 내밀었다.

얘네들은 저 녀석의 레벨은 커녕 이름도 몰랐으니, 내가 어떤 놈을 상대하고 왔는 지 잘 모르겠지.

뭐,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조용히 구석 자리에 앉아, 마차의 승차감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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