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 진짜다 -->
25화
감시병은 손잡이가 긴 창을 양손으로 잡은 채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빠르다!
순식간에 바로 앞까지 달려온 감시병은 나를 향해 창을 휘둘렀고, 나는 한번 내 검으로 창을 튕겨내보려 했다.
"크악!"
튕기긴 개뿔. 오히려 충격으로 인해 내 몸이 멀찌감찌 날아가 버렸다.
다행히도 낙하 데미지를 입기 전에 유화술로 전선에 복귀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어그로가 승현이에게 끌려 있는 시점.
때를 틈타 감시병의 뒤에서 순식간에 10스택을 쌓았다.
"미친, 벌써 들켰어?"
때리고 고작 3초만에 어그로가 다시 튀었다.
방어력 때문에 20스택까지는 눈치도 못 챌 줄 알았는데, 뭐 무슨 오감이라도 있는 건가?
하긴 뭐, 명색이 드래곤 둥지의 감시병인데 그 정도 실력은 되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이라 피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림자 도약으로 승현이 반대편으로 빠져나왔지만, 감시병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다시 창을 휘둘렀다.
"제가 막을게요!"
쿵!
놀랍게도 승현이가 들고 있는 대형방패에 감시병의 창이 막혔다.
"대, 대단해..."
"그래도 이거. 방금 그거 막고 내구도가 엄청 닳았어요. 아마 계속 막기는 힘들 거에요"
설령 공격을 많이 막지는 못하더라도 그 정도면 충분히 역전각을 노려볼 수 있는 기회였다.
"작전을 살짝 변경하자"
이제부터 승현이가 공격은 회피하며 도발스킬을 사용해서 최대한 어그로를 끈다. 혹시라도 못 피하겠으면 방패를 쓴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가능한 빠르게 뒤에서 스택을 쌓는다.
감시병의 HP는 80만 정도.
60% 정도의 피해를 막아주는 녀석의 방어력을 감안한다면, 대충 82타 쯤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매처럼 빠르게 날아다니며(다리 밑에 안 보이니 그렇게 보인다) 창을 휘두르는 날쌘 감시병.
그런 녀석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전투는 어느새 일정한 패턴 아래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뒤에서 열심히 스택을 쌓다가 어그로가 튀면 재빨리 그림자 도약으로 사정거리 밖으로 피한다.
그리고 승현이가 도발 스킬을 사용해 다시 어그로를 끌면 뒤로 돌아가 반복.
체력재생과 방어력에 치중한 성기사라는 직업에도 불구하고 승현이는 제법 잘 피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덧 내 스택은 79까지 쌓인 상태.
"끝이다!!"
빠르게 하나 둘 셋 휘두를 생각이었지만, 그건 내 큰 오산이었다.
쨍그랑!
끝내 몇 번의 공격을 버텨낸 승현이의 대형방패가 깨져버린 것이다.
"으윽, 젠장"
충격 때문에 승현이의 몸은 붕 떠 있는 상태. 공격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승현아!!"
생각할 틈도 없없다. 본능적으로 승현를 향해 몸을 던졌다.
내가 죽겠지만 적어도 승현이는 살 것이고, 어쩌면 저 녀석이 잡을 지도 모른다.
뭐, 살짝 아쉽긴 하네. 거의 다 왔는데. 내가 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처음부터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기에 후회 같은 건 없었다.
좋아. 이렇게 플래그까지 세워주면 작가가 알아서 구해주겠지.
감시병이 힘껏 창을 휘둘렀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생명의 신의 가호가 발동합니다! 치명적인 일격을 방어합니다]
"아!"
전투가 시작하기 직전 승현이가 내게 건넸던 포션.
깡 하는 소리와 함께 창이 튕겨져나갔다.
"하...하하!"
실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지.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마침 그사이 유화술의 쿨타임도 돌아온 상태.
나는 바로 감시병의 뒤를 잡았고, 녀석이 중심을 잡기 전에 빠르게 3연참을 그었다.
정확히 82타.
내 딜 계산은 정확했다.
[드래곤 둥지의 감시병을 처치하셨습니다!]
[처치자 : 현우, 승현]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에에. 저도 처치자에 들어가 있네요? 솔직히 한 것도 없는데..."
"그런 소리 하지마. 나도 네 덕분에 살아서 잡은 거야"
원래 감시병은 그리 경험치를 많이 안 주는 녀석임에도 불구하고, 280이라는 어마어마한 레벨 때문에 난 무려 10번이나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결국 잡았네요."
"응, 그렇네. 잠깐. 그나저나 이거..."
감시병을 잡고 나자 우리 앞에는 두 가지의 문이 새로 생겨나 있었다.
하나는 평범한 크기의, 던전 밖으로 돌아가는 문.
그리고 하나는... 드래곤 들이 들락날락 해도 될 정도로 큰 문.
"승현아 이거, 진짜였다."
진짜 드래곤이 있는 드래곤 둥지를 찾은 것이었다.
"헐 미친"
감시병을 잡을 때까지만 해도 둥지 안에 드래곤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페이크가 많은 게 이 던전이었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걸 찾아낸 것이다.
끼이익.
문을 열자, 안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자고 있는 은빛 드래곤의 모습이 보였다.
비록 저렇게 약해보여도, 랭커 파티가 겨우겨우 잡는 몬스터다.
"일단 여긴 닫아두자. 우린 아직 드래곤까지 잡을 실력은 아니야"
어차피 드래곤 둥지 안으로 들어가려면 감시병을 잡아야 되는데, 우리가 이미 잡았으니 다른 사람은 못 들어간다.
그래도 영 걱정된다면 여관주인한테 돈 먹이고 화장실을 막아버리면 되지.
"아 근데 형"
"응?"
"아까보니까 처음엔 HP 조금도 안 닳다가 계속 때릴 수록 확확 닳던데, 그건 어떻게 된거에요? 혹시 무슨 스킬 같은 거에요?"
"어, 음... 그게 말이지..."
그래. 얘한테는 말해도 되겠지.
날 그렇게 믿어서 그 귀한 유니크 포션까지 나한테 준 녀석이다. 이 정도도 못 말해준다면 그야말로 먹튀가 되는 것이다.
승현이에게 대충 내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캐릭터 생성때 이상한 시험을 보더니, 과학자라는 직업을 대뜸 설정해버렸다는 이야기.
지속적으로 스택을 쌓아야하기에 잡몹 사냥이 어렵따는 이야기까지.
"우와... 그런 거였군요. 갈수록 딜이 세지는 게 이유가 있었어. 멋지네요"
"...너가 해볼래? 초반에 진짜 암걸린다"
"근데 직업 이름이 좀 특이하네요. 대체 과학자가 무슨 상관인 거죠?"
"그러게 말이다"
아마도 이 세계의 과학은 아주 특별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럼, 돌아갈까요?"
* * *
돌아와보니 역시 그 여관 화장실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아니 글쎄, 화장실에서 30분 넘게 안 나오는 게 말이 되냐고요. 안에 무슨 일 있는 거 아녜요?"
"거 참,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여기 발도 보이잖아요"
...우리 슬슬 나가야겠지?
"흠흠, 거기 밖에 무슨 일 있으셨어요?"
승현이가 당당하게 쾌변 보고 온 사람 흉내를 냈고, 나는 그림자 도약으로 조용히 옆 칸에서 빠져나왔다.
"거 봐요. 아무 일 없잖아요! 의심도 아주 병이라니깐"
"아 아닌데... 분명 처음에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여관 주인과 밖으로 나갔고, 우린 둘이서 서로 키득거렸다.
========== 작품 후기 ==========
작가도 요즘 3연참 하는데, 주인공이라고 못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