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공의 폭풍 속으로 -->
24화
아틀란티스라고 거창하게 이름까지 붙혀놨지만, 사실상 정확한 이름조차 없는 본토랑 별 다를 게 없다.
하늘이 있을 자리에 물을 막는 보호막이 있고 왕국 하나의 절반 정도 크기밖에 안된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우와, 저 이런 데 처음와봐요"
"얘는 뭘 이런 거에 이리 놀라냐"
"오빠는 혹시 여기 와 봤어요? 관문 우리랑 같이 클리어한 거 보면 처음일텐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들 일행이랑 자연스레 말을 놓게 됐다.
그들은 원래부터 친한 사이였고 내가 괜히 꼽사리 끼는 건가 싶었지만, 의외로 잘 적응했다.
"나는, 예전에 했던 계정이 있잖아. 지금은 초기화 돼서 이 모양이지만"
"에이, 그래도 이 정도면 오히려 더 나은 거 아닌가요?"
스택 쌓이기 전의 극암걸리는 시간만 빼면 그렇긴 하지.
"방 하나요. 총 4명이고, 일주일로 잡아주세요"
여동생도 있고 조금 눈치보일지도 모르는데도 승현이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방 한 개를 잡았다.
그만큼 날 신뢰한다는 건가? 내가 밤 사이 이상한 짓을 하거나 하진 않을 거라 생각하는... 나 뭐래니!
"메일로 보냈던 일정표는 기억하시죠? 아틀란티스에서 일주일동안 머물거에요. 같이 사냥하시거나 아니면 그냥 쉬셔도 되요"
"...내가 잡몹 사냥 같은 건 잘 못해서"
승현이는 살짝 아쉬워 하는 표정이었지만, 고맙게도 내게 강요를 하지는 않았다.
"그럼, 날도 저물었겠다 이만 잘까요?"
침대는 정확하게 4개였다.
아까전의 전투로 인해 다들 정신적으로 지쳐있었기에, 우린 밤새 놀 생각은 꿈도 못 꾼채 침대에 쓰러졌다.
"모두 잘자..."
그 말을 끝으로 여관 방엔 깊은 고요가 찾아왔다.
* * *
"혀어어어엉! 내가 이상한 거 발견했어요오~!!!"
"흐아암, 꼭두새벽부터 이게 뭔 난리야"
그가 말한 것은 대충 이렇다.
꿀잠을 자던 중 급 똥이 마려웠던 승현이는 재빨리 1층으로 내려가 화장실을 찾았다.
곧장 남은 칸을 열었더니, 변기가 있을 자리에 변기는 없고 웬 구멍이 뚫려있다 하지 않는가.
심지어는 [보스룸에 입장하시겠습니까?]라는 메세지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나오려던 똥도 쑥 들어가고 이렇게 나한테 달려왔다는 것이었다.
"형, 이거 어쩌면..."
"응. 히든 보스룸일지도 몰라"
대체 왜 그게 여관 화장실 변기 자리에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문제의 화장실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수아랑 앨빈은 아직 자니까 냅두고, 우리끼리 갔다 오자"
"네"
새벽이라 그런지 순찰 돌던 여관주인도 쿨쿨 자고 있었다.
끼이익.
아니 무슨, 범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화장실 가는 데 왜 이렇게 신중하냐.
이윽고 우린 화장실에 도착했고, 승현이는 힘껏 문을 열어재꼈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게요. 왜이러지? 내가 잘못 본 건 아닌데..."
그리고 잠시후, 난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야, 여기 여자화장실이야. 급해서 딴 데 들어왔나봐."
"..."
음, 방금 일은 없던 일로 하자. 나도 쪽팔린다.
어쨌든 이번엔 제대로 된 화장실(?)에 들어온 승현이는 자신이 똥을 누려 했던 칸을 열어 내게 보여주었다.
"와, 진짜네..."
변기가 있어야 될 바닥에 왠 시공의 폭풍이 생겨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구멍.
그리고 그와 함께 나타나는 메세지.
[보스룸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그때. 갑자기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거기 혹시 계세요?"
"이크"
꼭두새벽에 그 분이 찾아온 사람이 더 있었나보다.
"어, 어떡하죠?"
승현이가 우왕좌왕하며 벌떡 일어서려 했고, 그러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고 말았다.
"으, 으어어어!"
그와중에 부딛힌 나까지 넘어졌고, 동시에 우린 시공의 폭풍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보스룸에 입장하셨습니다]
* * *
아니, 확인 버튼 안 눌러도 떨어지면 그냥 입장이었다고 말이라도 해 주던가...
"내 신발 어디갔지?"
아무래도 미끄러지면서 화장실에 놔두고 온 듯 했다.
지금 승현이와 나는 반강제적으로 보스룸에 갇혀버렸다.
그리고 보스를 깨지 않는 이상, 클리어를 포기 한다 거나 하는 등의 탈출 방법 따윈 없는 듯 했다.
"이렇게 된 거, 잡야야겠지. 아니면 보스한테 죽고 리스폰되는 방법도 있어"
"그건 좀 별로네요"
"일단 이게 뭐하는 보스룸인지부터 확인해보자"
나는 인벤토리에서 휴대용 횃불을 꺼내 주변을 밝혀보았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이 보스룸의 정체를 알아냈다.
"...망했다.
"괘, 괜찮을 거에요. 우리가 잡으면 되죠!"
"아냐. 그런 게 아냐"
천장 높이까지 치장된 에테르 장식. 베르사이유 궁전을 연상시키는 내부 구조.
곳곳에 새겨진 용 문양.
이곳은 드래곤 둥지였다.
"확실히 잘못 들어온 것 같은데..."
이곳은 원래 평범한 사람이 들어오는 곳이 아니다.
애초에 드래곤이라는 녀석이 어느정도만 한 사람은 다 잡아볼 정도로 흔한 몬스터도 아니지.
최소 열 명 이상의 '랭커'들이 파티를 짜야 겨우겨우 클리어 가능한 것이 드래곤이다.
그런데를 거의 초보자에 가까운 나와 승현이 둘이서 깰 수 있을까?
"후우, 일단 감시병만 잡는 걸 목표로 하자. 그 다음엔 출구가 나올거야"
드래곤 둥지와 감시병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드래곤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번에도 아마 그 케이스 일 것이다.
"받아요. 마시세요"
갑자기 승현이가 내게 물약을 하나 던졌다.
"이건?"
"워랜드 전체에 몇 개 밖에 없는 희귀 물약이에요. 마시면 치명적인 일격 한 번을 막아줘요. 딱 한 번이니까 조심하세요"
"그런..."
이렇게 귀한 아이템을 자기가 쓰지 않을 망정 날 주다니, 대체 왜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마침내 녀석이 모습을 들어냈다.
[드래곤 둥지의 감시병 Lv. 280]
웬만한 하이 랭커 급의 레벨을 보유한 보스몬스터.
이런 녀석이 단지 뒤에 더 센 몬스터를 잡기 위해 지나가야하는 관문이라니, 살짝 허무했다.
감시병의 몸체는 투명했지만, 푹 눌러쓴 갓처럼 생긴 모자와 짧은 망토 타격범위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제가 최대한 맞아드릴게요"
"아냐, 그럴려고 하지 마"
"네? 하지만 제 포지션은 탱커..."
"그렇다고 해 봤자 저정도 레벨 상대로는 아무 의미 없어. 그냥 너도 똑같이 딜러 하는 걸로 하자. 차라리 양쪽에서 서로 어그로 끌어주는 게 더 나아"
"아, 네"
왠지 니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뭐 같은 느낌이네.
대체 얘는 날 얼마나 믿고 있는 거야?
하지만 잡다한 생각도 잠시.
"쿠우우우..."
감시병의 포효가 둥지 전체에 울려퍼졌고, 탈출을 위한 우리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시공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