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잡이가 되다 -->
23화
"금요일 오전 11시까지. 집결지는... 아틀란티스 관문 앞 바닷가."
동향왕국에서 더 동쪽으로 가 바다를 돌아다니다 보면 거대한 수중도시가 있다.
말하자면 제 2의 세계랄까.
배경이 바닷속일 뿐 몬스터가 있고 각종 건물과 NPC는 똑같다.
단지 여기를 자유롭게 오가려면 먼저 아틀란티스 관문이라는 곳에 가서 아틀란티스 수문장이라는 녀석을 잡아야한다.
오늘 만나기로 한 파티는 이 수문장을 레이드할 생각이었다.
"저기... 혹시 현우 님 맞으세요"
"네? 맞는데요?"
혹시 또 길드 초대장이나 그런 거 날리는 건 아니겠지?
"오늘 만나기로 했던 파티장입니다. 이름은 승현이에요"
"아, 파티장님이시구나..."
설마 나 지금 실망한 건가?
"나머지 일행들은 어디계시죠? 설마 우리 둘이 다는 아니죠?"
"하핫, 당연히 아니죠. 잠깐 준비 좀 한다고 했으니까, 금방 올거에요"
대충 바닷가에 앉아 5분 정도 기다리자, 이내 두 남녀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어머. 이분이 그 새로오신 분?"
"응. 현우님, 이쪽은 제 여동생 수아. 그리고 이쪽은 제 친구인 엘빈이에요"
"안녕하세요"
내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엘빈이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hello, I'm so glad to meet you. I've heard a lot about you"
"..."
나 영어 할 줄 모른다고 미리 말 해둘걸 그랬나?
"하하, 장난이에요. 저도 한국말 할 줄 압니다"
"아아"
내가 너무 뻘쭘해 보였는지 에릭이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자, 그럼 자기소개부터 하죠. 전 파티장을 맡고 있는 승현이에요. 직업은 성기사, 포지션은 탱커입니다"
"제 직업은 사제에요. 포지션은 당연히 힐러고, 이름은 아까 오빠가 소개 했 듯 수아입니당"
"저는 전사고, 탱커 계열로 키우고 있어요"
"...확실히 딜러 포지션이 모자라네요."
"현우 님은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오빠!"
"아차!"
보통 워랜드에서 무턱대고 남의 직업을 물어보는 건 실례라고 한다.
만약 상대가 히든 클래스라면 말하길 꺼려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주변사람에게 의심받을 테니까.
예전의 나라면 큰상관 안하겠지만, 지금같은 경우에는 말하기가 좀 그랬다.
"아뇨, 괜찮아요. 저도 전사 계열이에요"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전사 '계열'이라고 했지 전사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
우리는 서로를 파티로 연결한 다음, 아틀란티스 관문 앞으로 걸어갔다.
평범한 해변가에 놓인 큰 포탈이 그것이었다.
가끔씩 평범한 워프 포탈로 생각하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지만, 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 상관 없겠지.
[아틀란티스 관문으로 입장합니다. 4인 파티가 감지되었습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확인"
파티장이 확인을 외치자 포탈이 열렸고, 우리는 서서히 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 * *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아틀란티스 수문장이 출현합니다. 수문장을 쓰러트리고 자격을 보이십시오]
수문장은 전신 철갑옷을 입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주는 보상과 경험치에 비해 조오온~~나게 세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파티플레이를 하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는 몬스터다.
"어, 근데 현우님..."
"네?"
"활을 들고 계시네요, 저번에 영상보고 검사 계열이신줄 알았는데"
"아, 저번에 해봤는 데 이게 더 편해서요"
저번 이벤트 때처럼, 장벽이나 탱커로 인해 내가 완전 프리딜을 넣을 수 있는 상황에선 오히려 활이 나았다.
어차피 검이나 활이나 나한텐 데미지가 똑같으니, 이왕이면 안전거리에서 활을 쏘아 스택 쌓는 편이 좋은 것이다.
"조심해! 시작한다!"
쿵!
멀찌감찌에서 거대한 물체가 떨어졌다.
수문장이었다.
"현우님은 수아랑 뒤로 빠지세요! 저랑 에릭이 앞에서 막겠습니다!"
둘은 바로 수문장에게로 뛰어가 검을 휘둘렀다.
어그로가 확실히 그들에게 끌렸고, 나는 안심하고 활시위를 당길 수 있었다.
물론 초반에 내가 쏘는 활은 전혀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이쯤이면 정말 뻘쭘할 정도로 HP가 깎이지 않았지만, 그것도 정말 잠시.
공격 회피 등에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게되자 연사속도는 초당 3~4번으로 빨라졌고, 내 스택은 순식간에 40타까지 쌓였다.
"우와, 손이 안보여... 아참! 전쟁의 신이시여, 전사에게 강한 힘을 주소서!"
"공버프 말고 공속버프 주세요!"
"네?"
"어차피 공버프 소용없어요! 차라리 공속버프를 올려주세요!"
"네, 네! 원소의 정령들이 그대에게 깃털의 몸을 선물할지니..."
가끔 사제들이 외우는 주문을 들으면 곰곰히 생각에 잠기곤 한다.
저런 걸 다 외우는 게 가능한 건가, 외우다 보면 오글거리지 않을 까 하는.
하지만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다시 귀를 닫았다.
빠른 민첩과 공속버프로, 나는 30초도 채 되지 않아 60타를 달성했다.
"굉장해... HP가 훅훅 깎이고 있어"
정말 말 그대로였다. 수문장의 머리 위로 200,000 정도의 HP바가 훅훅 깎이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70타를 달성했을 때.
한 발만 더 쏘면 잡는 그 시점에, 수문장의 시선이 내게로 고정되었다.
이때 쐈어야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젠장. 또 군중제이기다.
"어, 어떡해. 축복이 효과가 없어!"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는 동안 확실히 알아차렸다.
지금 수문장의 어그로는 온전히 내게 튀었다는 걸, 잡히기 전까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끌리지 않을 거라는 걸.
쿠궁.
수문장이 위로 높이 뛰어올라, 곧장 나와 수아 씨가 있는 곳으로 착지하려 했다.
"피해! 맞으면 바로 즉사라고!"
승현 씨는 여동생에게 도망치라 손짓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딱 한대만... 그거면 충분해"
수아 씨가 맞을 위험이 있으므로 녀석이 땅에 착지할 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그림자 도약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 뛰어 올랐다.
이 정도면 수문장을 유화술의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한 거리에 닿아있었다.
더이상 망설일 것도 없이 유화술로 뒤를 잡은 나는 녀석의 뒷목을 향해 검을 크게 베었다.
"하아아아아아!"
전신 갑옷이 가려주지 못한 빈 공간으로는 7만 8천의 데미지가 그대로 들어갔고, 녀석은 땅에 푹 떨어졌다.
[아틀란티스 수문장을 처치하셨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출입할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후아..."
레벨업 했을 때 생기는 아주 잠깐, 1초도 안되는 무적시간 덕분에 나는 땅에 추락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결국 잡았네요. 뭐, 사실상 현우 님이 다 하셨지만"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저도 솔로였다면 진짜 힘들었을 거에요"
"와, 겸손하시기까지. 우리 오빠랑 진짜 비교되네요"
"야!"
사실 겸손 떠는 게 아니라 진짜였다. 저 난폭한 녀석한테 시작부터 온갖 어그로를 다 끌렸다면 나도 못 잡았을걸.
보스 치고 레벨은 하나 밖에 오르지 않았지만, 아틀란티스 출입 자격을 얻었으니 그거면 충분했다.
"그럼, 아틀란티스로 갈까요?"
"좋죠!"
수중도시 가즈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