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길동이냐 -->
19화
이 녀석들에게서도 보였다.
붉은 색 살인자 표식이.
"어쭈, 용케 살아남았네?"
"이봐 형씨. 살려는 줄테니까, 우리가 해달라는 것만 순순히 해줘. 알았지?"
과연 요것들은 뭐하는 녀석들일까.
아킬라 왕국 때처럼 뭔가 사건과 관련되어 날 찾아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마차 털러 온 좀도둑일 수도 있다.
둘 다 나한테 적대적인 경우니까, 만일을 대비해 미리 뒤에 검을 준비해 놓았다.
"원하는 게 뭐야?"
"간단해. 그냥 인벤토리에서 골드랑 돈 될만한 아이템 몇 개 정도? 우리도 그렇게 큰 걸 기대하진 않으니까 안심해."
음, 좀도둑이었네.
"기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 아냐?"
"...뭐?"
"템이 많다는 건 레벨이 높다는 건데, 실수로 잘못 건드리면 죽을 까봐 쫄아서 못 기대하는 거 아니냐고"
예전부터 난 암걸리게 하거나 나대는 놈들은 딱 질색이었다.
상대가 강하면 어쩔 수 없지만, 가끔 나보다 약한 주제에 뭣 모르고 덤비는 놈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볼 때, 이 녀석들도 그런 부류다.
"살려준답시고 괜히 관대한 척하지마라. 못 훔쳐가는 거 티나."
"너, 너 이새끼 지금..."
"우리 레벨을 모르고 나대는 거지? 지금이라도 삭삭 빌면 살려준다"
"왜. 꼬와? 꼬우면 그냥 죽이고 뺏어가. '할 수 있으면'"
"..."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표정 다 보인다.
지금 저 두 놈 다, 멘탈 완전히 갈렸다.
"한대 쳐맞고 징징거려도 안 살려준다. 사망 패널티가 아깝지도 않나"
"한 대도 안 맞을 거니까 그럴 일 없을 걸. 딱 10초준다. 안 때릴 테니까, 먼저 공격하든 분수 파악하고 꺼지든 알아서 해. 십, 구..."
당연한 말이지만 절대 저 녀석들이 꺼질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역시 10초라는 시간을 주니 미친개마냥 둘이서 달려오고 있었다.
잔뜩 빡쳐서 당장에라도 날 죽이려고 눈 뒤집고 달려오는 놈들이 시간차 공격같은 걸 할 리가 없지.
유화술 쓸 필요도 없이 그냥 슥 피해버렸다.
"미, 미친. 뭐야?!"
"10초동안 안 때린 다고 했지, 안 피한다고 한 적은 없다. 7, 6..."
공격패턴이라는 게 정말 너무 단순했다.
패턴만 외우면 눈 감고 좌우로 움직이면서 피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물론 그랬다가 한 대라도 맞으면 죽을테니 진짜 그러지는 못했고.
"3...2...1. 좋아, 끝까지 안 꺼졌다 이거지? 아이템 드랍은 잘 먹을게"
도적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HP가 그리 높지 않다.
높은 민첩 스탯과 자물쇠따기, 함정해체, 은신 등의 갖가지 스킬들을 이용한 서포터 역할군.
...라고 말은 좋지만 사실상 전투직업 중 1대1에선 최약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직업이다.
덕분에 참교육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때리고 피하고 때리고 때리고 때리고 피하고.
두 놈중에서 제일 앞에서 나대던 놈부터 때렸다.
"뭐, 뭐야? 분명 네 공격은 방어구도 못 뚫었는데..."
"그래. 그랬겠지. 그런데 말야, 이따구인 공격력으로 너 말고도 여럿 잡아봤단다."
1분도 채 안되서 한 명 보내버렸다.
[살인자 표식이 붙은 플레이어를 처치하셨습니다]
[제압자 표식이 강화됩니다. '처형자' 표식이 남습니다]
[살인자가 가지고 있던 모든 아이템이 드랍됩니다]
한명 처치하자마자, 바로 남은 한 명한테 유화술 써서 한대.
...치려고 했는데.
"큭, 걸려들었구나."
"...?"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최면마법이 날 스르륵 덮쳤다.
제길, 이딴 함정에 넘어가다니...
* * *
정신을 차린 나는 얇은 밧줄 같은 것으로 나무 의자에 묶여 있었다.
여긴 어디지?
"드디어 깨어났군 그래."
음, 아무래도 아까 그 도적의 본거지인가 보네.
평범한 좀도둑이라 하기엔 꽤 본거지가 꽤 넓었다. 큰 동굴 속을 횃불이나 그런 것 따위로 밝혀서 살고 있는 듯 했다.
"도적단이었나..."
"그래, 이제야 알았냐? 넌 처음부터 개길 상대를 잘못 고른 거야"
단장으로 보이는 새끼가 비웃었다.
그럼 다짜고짜 마차 엎어놓고 돈 내놓으라 하는 데 거기서 안 개기고 순순히 내놓을 녀석이 있을 것 같냐?
현실도 아니고 게임인데?
절대 그럴리가 없지.
"야, 너. 레벨이 어떻게 되냐."
"58이다. 왜, 어디 한 번 붙어보시려고?"
"좇밥이네"
"...뭐? 너 이새끼가 지금, 말 다했냐?"
사실상 58레벨이면 어디가서 좇밥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아까처럼 멘탈 터뜨리려고 심기 한 번 건드려 본거다.
"순순히 말로 해볼 생각도 했지만,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는 성질 좀 고쳐놔야지? 네가 자초한 거니까 질질 짤 생각은 하지 마라"
"너나 잘해. 목에 칼 들어온 다음에야 빌지 말고 미리 항복하는 건 어떠냐?"
"하, 진짜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나"
이젠 빡침을 떠나 진심으로 날 한심하게 보는 듯 했다.
[1대1 결투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윽고 단장은 거대한 배틀액스 같이 보이는 걸 가져왔다.
설마, 저걸로 내 뚝배기를 깨려고?
결투장에서 결투 도중 HP가 0이 될 경우 사망하지 않고 결투 패배로 처리되며, 5분간 기절 상태가 된다.
그걸 이용해서, 저 도끼로 계속 뚝배기를 깨버리는 싸이코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ㅈ....
"이왕이면 좀 아픈걸로 해줘야지. 앞으론 나대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
미친놈. 진짜로 그럴 건가 본데?
저렇게 나온다면야, 절대 맞아줄 수 없지.
유화술을 사용함과 동시에 밧줄에서 풀려났고, 나는 순식간에 단장의 뒤를 잡았다.
"뭐, 뭐야! 어디 간거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데 굳이 내가 뒤에 있다고 알려줄 필요는 없지.
그냥 눈치채기 전까지 죽어라 스택을 쌓았다.
타다다다다다다다.
정말 혼신을 다해 빠르게 휘둘렀고, 덕분에 5초에 20스택을 쌓는 기염을 토해낼 수 있었다.
그동안 전부 몰빵했던 민첩 스탯이 효과를 발휘했다.
"병신아, 니 뒤에 있어"
고통 감각을 0으로 설정해놨는지, 내가 키득대며 어깨를 툭툭 칠 때까지 녀석은 눈치조차 못 채고 있었다.
깜짝 놀란 단장은 허겁지겁 도끼를 휘둘렀지만, 저걸 그대로 맞아줄 내가 아니었다.
도적이라 애초에 도끼라는 무기 자체가 익숙치 않았던 것이다.
고정된 대상에게 한번 세게 휘두를 때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지속적으로 휘두를 경우 공격속도도 낮아지고, 완전히 불리한 상황이 된다.
특히나 지금처럼 상대가 한 대도 안 맞아줄 경우엔 더더욱.
"으윽, 이 쥐새끼 같은 놈!"
결국 단장은 단검으로 무기를 교체하고 내게 달려들었지만, 이미 난 40스택까지 쌓인 뒤였다.
"내가 명언 하나 알려줄게"
유화술과 빠른 회피로 단장을 농락하면서, 나는 여유롭게 명언을 읊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스윽.
진동타격까지 사용해 공격하다 보니, 녀석의 HP는 금세 0이 되어 있었다.
[결투장이 종료되었습니다]
[승리자 : 현우!]
"..."
결투는 승리했지만, 그닥 기쁘지 않았다.
지금 내 앞엔, 기절한 대장의 도적단원들이 산더미 만큼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 대 118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 * *
"새로운 대장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
뭐야, 대체 뭐냐고!
========== 작품 후기 ==========
비축분을 쌓다가 그냥 심심해서(?) 한번 연참합니당... ㅎㅎ 그러니까 추천 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