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 막타 내꺼야 -->
16화
처음 얼굴을 봤을 때부터 저 케인이라는 녀석에 대한 인상은 좋지 않았다.
기분 나쁘게 웃으며 나타나놓고는, 대놓고 날 깔보는 듯한 투로 파티제안을 툭 던져놓은 것이다.
"뭐, 싫으시면 말구요. 그냥 혼자 낑낑대다가 죽으셔도 전 별 상관 없는데"
"..."
진짜, 저새끼 한 대 때리고 싶다.
하지만 난 수락버튼을 누를 수 밖에 없었다. 쪽팔리긴 하지만 사실이니까.
지금 나 혼자 사신을 잡기엔 무리다. 딜이 모자라는 게 아니라, 매초마다 계속 포커싱 당하고 있으니 공격할 틈이 없는 것이다.
내가 마음대로 때릴 수 있도록 사신의 어그로를 끌어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저새끼도 암살자 클래스로 보이는 만큼 그 역할을 잘 해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케인 님의 파티 초대 요청을 수락하셨습니다]
"공격은 내가 할 테니까 탱 역할이나 잘 해요!"
역시, 생긴 것부터 탱 안 할것 같이 생겼더라니. 미안하지만, 나는 탱을 하고 싶어도 못한단다.
"아무리 니가 암살자라고 해도 HP 자체는 너가 더 높을 걸? 그러니까 니가 알아서 어그로 끌어봐!"
"개소리 하지 말고요! 빨리 어그로 끌라고요!"
나는 녀석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채 사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톡.
스택이 쌓여있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하자 역시 HP가 깎이지 않았고, 케인은 날 더욱 비웃었다.
"때려봤자 데미지도 안들어가네. 그럴거면 그냥 나한테 맡기지 그래요?"
그가 사신의 품 속으로 확 들어가서 단검으로 슥슥 긋고 나오자, 사신의 HP가 5%정도 확 깎였다.
고작 5%가지고 그러냐고 그럴지도 모르지만, 30,000중의 5%면 방어력 감소를 받고도 1,500의 데미지가 들어갔다는 소리다.
"이정도도 못하는 데 무슨 딜러를 잡겠다고..."
아오, 저걸 진짜 확!
하지만, 딜러를 빼라고 뺄 내가 아니었다. 사신의 어그로가 왔다갔다 할 동안 꾸준히 스택을 쌓았고, 결국 어느정도 무시 못할 딜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 새끼는 그걸 전혀 모르는 것 같네.
내가 끝까지 탱커자리를 거부하자, 이젠 거의 반쯤 짜증내듯이 말하고 있었다.
"아니 좀, 몇 대만 맞아달라고요!!"
"넌 좀 닥쳐!"
니가 HP인 사람의 슬픔을 알아? 아냐고!
내가 때리면 나한테 어그로가 끌리고, 그 때 또 쟤가 때려서 쟤한테 어그로가 끌리고, 다시 내가 때리는 그런 해괴한(?) 광경.
정말 신기한 건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는 한 대도 맞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또 나는 느리게나마 스택을 쌓을 수 있었다.
"아니 무슨, 사신이 이렇게 HP가 많은 건데?!"
톡 치면 부러질 것 같은 뼈마디에 천옷 하나 걸쳐놓고 저렇게 무지막지한 HP를 주면 어쩌라는 거야?
30,000에 달하는 HP에도 불구하고, 벌써 사신은 딸피가 되어 있었다.
지금 내 스택은 총합 62타.
분명 시작할때는 동료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서로를 완전히 경계하고 있었다.
아, 시작할때부터 적대적이었지.
처음에는 최소한 협력하기라도 했지, 이젠 사신도 거의 다 잡았으니 더이상 서로를 도울필요가 없었다.
파티 사냥이 후반에 갈 수록 딜러들이 자신이 차지하려 하는, 이제부턴 '막타'싸움이었다.
막타를 먹느냐 못 먹느냐에 따라 내가 받는 보상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 보스레이드는 솔팟이었으므로 전부 막타보상을 받았지만, 여기서 만약 저 새끼한테 막타를 뺏길 경우 그 보상이 급감하는 것이다.
케인은 자기가 막타를 먹을 것이라고 완전히 자신하는 듯 했다.
훗, 멍청하군.
아직까지도 내 공격력이 올라갔다는 걸 모르다니.
설마 지금까지 내가 데미지도 안 들어가는 공격을 60번이나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럼 내가 진짜 멍청하게 보였다는 거잖아?
갑자기 더 빡친다.
어느덧 사신의 HP는 10%미만.
케인이 막타를 위해 단검을 휘두르려는 그때.
"응 막타 내꺼야~!"
유화술로 뒤를 노려 재빠르게 두번 슥슥 긋자, 사신의 HP가 순식간에 0으로 떨어졌다.
[그란 시티 공동묘지의 사신 을 처치하셨습니다!]
[파티 플레이가 감지되었습니다. 보상이 자동으로 분배됩니다]
[6,653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총 5번의 레벨업에 3천 골드. 역시 내가 상대하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보스였음이 분명했다.
다행히 막타 보너스 덕분에 추가경험치와 골드가 쏠쏠했다.
그리고, 막타를 뺏긴 저 새끼의 표정도 볼만 했고.
"미친... 갑자기 뭔 딜이야..."
나는 씩 웃어준 뒤 여유롭게 제이슨의 묘지로 향했다.
뒤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아마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 거리고 있겠지.
* * *
묘지를 파헤치고 설계도를 찾아내는 과정은 정신건강에 해로우므로 굳이 묘사하지 않겠다.
그런데, 텔레포트 수정이 충전될때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버렸다.
남향왕국으로 텔레포트는 안되고, 그렇다고 그란시티에 계속 머물기도 싫어서 그냥 접속을 종료했다.
수정이 충전되려면 앞으로 3시간 정도.
게임에서 나온 나는 무료하게 소파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 볼만한게 있겠지 싶어 TV를 켜 52번 채널을 틀었다.
VGN.
워랜드와 같은 가상현실 게임만을 다루는 게임프로.
아나운서와 몇몇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아 뉴스타임인 듯 했다.
[이번엔 워랜드의 소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차영준 씨, 이번엔 무슨 일이죠?]
[네, 최근 캡슐 내 촬영장비들이 활성화되면서 가상현실 게임을 방송하는 스트리머들이 늘고 있는데요.
그중 단연 1위라고 불리는 플레이어 '케인'에 관련한 소식입니다!]
"푸흐흡! 콜록, 콜록..."
너무 놀란 나머지 사레가 걸렸다.
케인? 방금전까지 나랑 파티했던 그 개싸가지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분은 PK플레이어 아닌가요? 그런데도 시청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뭐죠?]
[케인은 신들린 컨트롤과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PK일종의 '빡겜 방송'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는 거죠.]
"아닐거야..."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컴퓨터로 인터넷에 들어갔다.
티치TV(Titch TV). bj가 아닌 스트리머라는 단어를 사용한걸 보아 여기가 플랫폼일 것이다.
나는 검색창에 바로 케인을 검색한 뒤, 가장 최신 영상을 들어가 클릭해보았다.
[그란시티 공동묘지]
[하 진짜... 더럽게 무섭네. 그래도 방송은 방송이니까, 사신 잡고 바로 돌아갈게요. 잠깐. 사신 왜 저쪽에 있지?]
"..."
진짜 그 새끼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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