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체질은 아닌가봐... -->
13화
그냥 게임일 뿐이라고, 메멘텔 산맥을 너무 무시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출발할 수 있었다. 입구 부분은 지형이 그렇게 험한 것도 아니었고, 금방 정상이 보이겠지 했다.
만년설까지 쌓인 산을 괜히 얕봤다.
"대체 이거, 언제 끝나는 거야?"
벌써 8시간은 등반 했는데도, 처음 올라올때 보았던 정상과의 거리에서 조금도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아직 만년설이 있는 부분까지도 못 갔다고. 등반하는 높이가 거의 에베레스트 급이었다.
결국 해가 저물었고, 나는 정상은 구경도 못한 채 텐트를 쳐야 했다.
"만년설 대비해서 방한복까지 챙긴 건데, 춥기는 커녕 덥다 더워 어후"
솔직히 말해서, 덥다는 건 내 허탈감을 과장하기 위해 표현한 개뻥이었다.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한입으로 빵을 베어물었다.
길게 만든 빵에 묻은 설탕가루가 꽈배기랑 비슷한 식감을 낸다.
내가 꽈배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종일의 산악때문에 지친 몸에 훌륭한 에너지 공급원이 되어주었다.
"피곤해..."
10시간동안 잠깐 휴식시간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산을 올라왔으니 더이상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나는 텐트에 침낭을 깔고 그대로 누워 잠을 청했다.
생각할 것도 없다. 있어도 내일 생각하자. 지금은 아무생각도 못하겠어...
* * *
다음날도 별건 없었다. 텐트를 접고, 산악을 계속했다.
내가 왜 여기를 선택했는 지 갑자기 후회되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란 시티에서 보스만 잡고 돌아올걸...
"으아아아아아!!!"
메아리가 울릴 듯 힘껏 소리치자, 놀랍게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런데, 다시 기분이 안좋아졌다.
내 외침소리를 들었는 지, 산에 살고 있던 주변 몬스터들에게 광역 어그로가 끌려버린 것이다.
"ㅆ...바"
끝또 안 보이는 산 등반하는 게 하도 뭣 같게 리얼해서 그런지, 순간 이게 게임이라는 걸 까먹어버렸다.
설인 괴수라는 보스몹을 잡기 위해 여기에 왔으니, 당연히 설인 괴수 외에도 여러 몬스터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으이구, 이 멍청한 뇌자식아.
그러나 머리를 한대 꽁 쥐어박으며 자해를 한다 한들 저 몬스터들이 다가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망했다."
평범한 산인 만큼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비현실적인(?) 괴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녀석들보다도 훨씬 더 난폭하고 위험해보이는 야생곰들이 왔다.
"그르르..."
아니 대체 내가 뭘 했다고, 이 놈들은 이렇게 달려오는 거야?
아마도 여기서 내가 이렇게 울부짖는 행동(?)을 자신들의 영역침범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저기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말로 하면 안될까?"
알아들을리가 없잖아 멍청아.
이젠 정말 방법이 없는건가... 그렇다면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는 수밖에.
전쟁의 역사로 유명한 고대 중국의 삼십육계 중 마지막 병법 주위상책(走爲上策)
여의치 않으면 피하라.
"으어어...업!"
아까처럼 꾀꼬리마냥 소리지르며 도망칠 까봐 아예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뒤론 정말, 쉬지 않고 뛰기만 했다.
영역침범자인 날 죽이려고 달려드는 야생동물들을 피해,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렸다.
"으으, 작작좀 쫓아와라 이 곰탱이들아아아아~~!!!!"
오히려 어그로가 끌려 더 몰려올 뿐이었다.
뒤돌아서 잡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너무 무리였다.
최소 수십마리다. 매초마다 몇 번씩 공격을 받을 것이고, 이정도면 그때처럼 일일이 특징을 외울 수도 없다.
스택을 쌓는 게 거의 불가능하니, 저 곰젤리 마냥 뛰어오는 녀석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방금전까지 지나친 산악으로 지칠대로 지친 나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를 보이고 있었다.
역시 위험한 상황에 대비한 에너지는 따로 있었나 보다.
얼마나 달렸을까.
결국 만년설이 쌓이기 시작한 지점까지 도착했고, 더이상 야생곰들은 쫓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여기부턴 저들의 영역 밖인 것 같네.
"헤헷! 여기부턴 못 쫓아오지? 어디 한 번 와바라 하하하핫... 에엣취!"
개지랄 떨다가 감기걸려 뒤질뻔 했네.
[경고! 체온이 급감하셨습니다]
[곧 질병질환이 발생하며, HP가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부턴 방한복을 착용해야겠구나.
나는 인벤토리에서 전신방한복을 꺼내 착용했다. 등에 대고 살짝 누르자 저절로 펴지며 전신을 감쌌다.
"오오, 이런 거구나!"
외형은 스폰지밥에 나오는 어항잠수복처럼 생겼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유리 밖으로 보이는 날씨와 눈을 밟는 촉각이 아니었다면, 지금 내가 추운 눈밭 위에 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그렇게 추위는 해결되나 싶었지만, 아직 한가지 문제가 더 남아있었다.
"시발... 무슨 지형이 이래?"
멀리서 올려다 봤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바로 앞에서 본 정상루트는 험하기 그지 없었다.
애초에 이걸 사람이 올라가라고 만든 건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현실의 자연이었으면 할말이 없지만, 이건 게임 제작사에서 만든 지형이잖아.
이왕 만들어서 보스 몬스터를 출현시킬거면 좀 쉽게 해주면 안돼?
험하게 깎인 바위를 넘아가면, 높은 절벽이 꼭대기를 가로막고 있었다.
후, 이걸 넘어가야 보스몹이 나온단 말이지?
나는 크게 심호흡 한 뒤, 천천히 바위를 향해 걸어갔다.
바위 쪽은 그나마 그리 어렵진 않았다.
물론 지형도 험하고 굉장히 쫄렸지만, 그래도 최대한 자세를 엎드려서 조금씩 올라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뒤에 나타난 절벽이었다.
높이는 대략 10m 정도. 돌아갈 길 따윈 보이지 않았다.
경사도 거의 수직이어서 그냥 올라가기란 불가능했다.
"이걸 타고 올라가야된단 말이지..?"
이럴 땔 대비해서 앵커를 가져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려갈 때' 용이다.
올라가지도 않은 곳에 앵커를 꽂을 순 없는 노릇. 어쩔수 없이 여긴 그냥 아무장비 없이 타고 올라가야 한다.
하, 인생 참...
나는 잔뜩 쭈그린 표정으로 절벽 앞에 섰다.
굳이 뜸 들일 거 뭐 있나. 그냥 빨리 올라가기나 하자.
조금 튀어나온 부분을 손으로 짚고, 다시 그부분에 발을 딛으며 올라가고. 또 그 위쪽의 튀어나온 부분을 찾는다.
이론은 완벽했다. 문제는, 그 이론이 우리 동네 체육관의 실내 암벽등반 기구에서나 쉬운 것이라는 것이었다.
눈보라 속에서 짚을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마치 누군가가 칼로 깎은 것처럼 평평한 곳도 있었다.
한번은 유리창에 묻은 눈을 닦다가 떨어져 죽을 뻔 하기도 했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다시 처음부터 올라올 순 없지"
아마도 여기 보스를 공략하고 나면, 당분간 메멘텔 근처에도 안 올 것이다.
그렇게 꾸역꾸역 억지로 올라오다보니, 어느새 난 산 정상에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녀석을 직면하게 되었다.
[고정형 보스 몬스터, 메멘텔의 설인 괴수가 나타났습니다]
[보스레이드가 시작됩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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