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겜창이라 그래(외전?) -->
12화
[최대 캡슐 연속 이용시간을 초과하셨습니다. 접속이 강제 종료됩니다]
[재접속 대기 시간: 05:00:00]
"휴우, 결국 또 이렇게 되는건가..."
족히 일주일 동안은 계속 캡슐 안에 있었을 것이다.
게임속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시작마을에 있었을 때부터 단 한번도 접속을 종료한 적이 없었으니까.
장기간 접속자를 위해서 충전만 해 놓는다면 캡슐에서 자동으로 물을 공급해주지만, 밥까지 떠먹여 주지는 못하는 노릇이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오랫동안 램수면 상태였다가 깨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관절을 포함한 몸 전체가 뻐근했고, 커튼 뒤쪽으로 얕게 비치는 햇빛에도 눈이 부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꼬르륵.
"배고파..."
게임을 시작한 뒤로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배가 빨리 빵 한조각이라도 넣어달라 아우성치고 있었다.
모 개발사의 핸드폰의 내장인공지능에게 '배고파'라고 질문하면 이런 대답이 나온다는 루머가 있다.
[뱃살이 등가죽에 달라붙을 정도로 배고프진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지금이 딱 느낌이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허기 때문에 무언가를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솟아오르는데, 정작 에너지가 없어서 움직이지를 못한다.
움직이지 못하니 먹지 못하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으아, 빨리..."
재빨리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에너지바 몇 개를 떠올렸다.
그동안 상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콜록, 콜록!"
에너지바 봉지 끝자락이 손에 닿자마자 허겁지겁 뜯어먹었다.
너무 급하게 먹었는지 제대로 씹히지 않은 견과류 같은 것들이 잘못 넘어가며 사레가 걸리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대충 당장의 허기를 달래자, 몸에 약간의 활력이 돌기 시작한 것같았다.
물론 내 착각이겠지만.
뭐, 이 에너지조차 사라지기 전에 빨리 먹을 것을 준비해두자.
집에 뭐가 남았더라?
* * *
뽀글뽀글뽀글...
기포가 끓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냄새가 났다.
맛의 묘미를 더해주는 건더기는 제쳐놓고도 얼큰한 국물과 쫄깃쫄깃한 면발이 어우러진 이 환상의 음식은...
"뭘 그렇게 수식어를 붙혀. 라면이잖아."
"왜 그래. 누나같이 고급진 거에만 맛들린 상류층이라면 모를까. 나같은 사람한텐 이게 얼마나 신성한 음식인데"
박정혜.
서울 명문대로 소문난 S대 졸업생이며, 요즘 꽤 잘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들은 우리 친누나다.
예전부터 떨어져 살아서 그렇게 친하진 않다만, 요즘 들어서 또 변한 게 한가지 보였다.
"...그새 더 늙었어"
"야! 한살 밖에 차이 안 나잖아! 너야말로 반오십인 주제에"
그런가... 나도 벌써 그렇게 된 건가...
대체 내가 뭘했다고, 뭘했길래 벌써 반오십인거지?
"...뭐냐 너, 갑자기 또 현타왔냐?"
"누나가 이해해. 겜창인생이라 그래."
"너도 좀 다른 걸 시도해보는 게 어때? 아무리 반오십이라곤 했지만, 오십살 될때까지 지금 살아온 나날만큼이나 더 남았다구."
이내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 지, 누나도 날 돕고 싶어하는 듯 격려의 말을 꺼냈다.
하지만 나한텐 전혀 도움 안된다고.
"지금이라도 공부를 다시 해보는 거야. 대학에도 도전해보고, 취직도 하고, 또 그러면서 돈도 벌면..."
"그런다고, 그 생활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임보다 가치 있는 생활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아니, 이건 누나가 확신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야. 내 안에 그런 확신이 없다고. 이 게임이 아니면, 나한테 뭐가 있는 건데?"
2028년.
국제보건기구에서 게임중독을 정신병의 일종으로 지정한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리고 난 그중에서도 매우 심각한 환자였다.
어렸을 때 게임에 처음 빠졌던 건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초등학교때 친구들이랑 같이 놀면서 자연스럽게 배웠다.
다른 아이들은 학년이 높아지면서 공부 같은 것들에 밀려 자연스레 게임을 끊었지만, 나만은 그러지 못했다.
애초에 부모님과 거의 단절된 채로 살았으니, 게임중독에 대한 심각성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못한 것이다.
나랑 같이 살았던 유모는 괴팍한 돌팔이었다.
내가 집을 늦게 들어오든, 무슨 지랄을 떨든 죽거나 다칠 수 있는 일에만 제재를 했다.
게임중독을 막는 것은 제재 사유에 해당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때문에 나는 서서히 중독에 빠져드는 것을 느끼지도 못한 채, 어느새 스스로도 심하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누나가 그 뛰어난 성적으로 심리상담사가 된 것도 단연 나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날 다시 바꿔보겠다는 생각에.
"미안해, 누나의 기대에 부응해주지 못해서..."
누나는 단지 나 하나때문에 꿈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상담사가 된 건데.
정작 나는 좀처럼 나아질 기세를 보이고 있지 않으니.
오히려 워랜드의 출시 이후로 더 나빠지고 있으니 누나가 크게 실망할 법도 했다.
"아니야, 신경쓰지마. 나중에 다시 올게. 그동안 죽지나 마. 너 계속 그러다가, 조만간 진짜로 쓰러진다?"
"너무 간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죽지는 않아."
"글쎄다. 게임을 접으면 살 수도 있지."
"뭐야. 결국 속내는 그거였지. 킥킥."
누나의 농담에 나는 피식 웃었다. 뭐, 아직까지 게임을 접거나 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녀는 내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현관문을 통해 유유히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이 넓은 집엔 다시 나 혼자만 남아버렸다.
* * *
메멘텔 산맥.
에란젤 북부에 위치한, 워랜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가진 산맥.
지구로 따지자면 히말라야 정도로 보면 된다.
"저 끝봉우리에, 새로운 보스몹이 있단 말이지."
다들 알다시피 내 HP는 1.
거기다가 별도의 추위내성 아이템을 착용하지 않는 이상, 극저온에서 받는 동상 피해는 방어력무시 피해다.
죽지 않고 등반하려면 겁나 비싼 추위내성 장비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흐아, 또 돈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구나.
가격이야 에란젤 수도에서 사가는 것이 더 싸겠지만, 품질은 메멘텔에서 직접 사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바닷가 바로 앞의 횟집과, 거기서 트럭에 물고기 싣고 내륙까지 가져와 장사하는 횟집 중 어디가 더 신선할까.
살짝 말도 안되는 논리가 펼쳐진 듯 했지만, 어쨌든 난 메멘텔에서 방한복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텔레포트 수정 덕분에 이동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음, 이걸로 할게요."
상점을 오래 둘러보지 않고도 바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신발부터 머리 끝까지 감싸주는 전신 방한복은 이거 밖에 없었거든.
[준(准)에테르 전신 방한복]
[약한 에테르 열선으로 한기를 막아주는 방한복. 생김새는 다소 우스꽝스러워보일지도 모르나 효과만큼은 굉장하다.
버튼 하나로 탈부착이 간편하다]
전에도 말했듯 에테르는 꽤 고레벨 방어구들에서나 사용되는 희귀재료.
주변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태어나, 명장들은 착용자의 피해를 흡수하도록 에테르석을 각인한다고 한다.
이녀석은 온전한 에테르는 아니지만, 그래도 에테르석 반 조각을 이용한 준에테르 방한복이라고 하니, 어느정도는 신뢰가 갔다.
"좋아, 등반 장비도 준비됐고."
이제 다시 사냥하러 가볼까?
========== 작품 후기 ==========
가끔씩 현실 얘기도 필요할 것 같아서 이렇게 한번 넣어봤습니다. 앞으로 요 부분을 어떻게 할지는 나중에 투표를 하든지 할게여.
마지막으로 선작/추천 한번씩 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