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출 -->
10화
"으아아아, 이녀석들! 다 죽여버리겠어어~~!!"
나한테 이 지랄을 떨게 만드는 작가놈을 확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뜩 화난 어린아이 마냥 경비들에게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최소한 느낌있게 기합넣고 달렸으면 쫄기라도 했을텐데, 이러니까 오히려 날 우습게 쳐다보고 있다.
뭐, 사실 그게 목적이지만.
"이녀석 뭐야? 킥킥, 귀엽네."
대충봐도 180은 되어 보이는 거구가 키득거렸다.
"이얍, 죽어라!"
와, 방금 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 안드냐 작가야?
하다가 진짜 소름돋았다. 내가 이렇게 유치하고 중2병스러울 수 있구나 하는 자괴감에...
심지어 그 목소리로, 쥐꼬리 만큼도 안들어가는 주먹질을 해대고 있으니 참.
"음?"
슬슬 저녀석도 당황하기 시작했나보다.
분명히 난 공격을 하고 있는데도, HP는 1도 닳지 않았을 테니까.
곧 이유를 알아차리겠지.
"잠깐. 설마 이녀석, 방어력보다 공격력이 낮은거야?"
"그래도 공룡들이랑 같이 산 걸 보면 어느정도 할 줄 알았는데... 그냥 좇밥이잖아?"
그래도 내가 너무 한심하게 보였는지, 옆에 있던 사내가 날 발로 걷어찼다.
"아악!"
원래같았으면 발이 닿자마자 죽었을 테지만, 다행히도 지금의 나에겐 방어력이 있었다.
이거, 정말 간신히 버틴거다.
방어력 200 정도면, 받은 피해가 한 180 정도였으려나?
맨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발차기의 데미지는 엄청났다.
그만큼 레벨이 높다는 소리겠지. 더 방심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흐아아앙!"
작가 이새끼... 내 생각보다 더 심한 녀석이었어...
내가 한 대사에서 나오는 오글거림을 간신히 참으며, 나는 다시 또 경비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뭐, 계속 때려봐라. 킥킥"
내 공격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걸 눈치채자, 사내는 그냥 대놓고 내게 공격을 허락해 주었다.
좋아, 이게 기회다.
* * *
처음 달려올 때, 유치원생들이 보는 만화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를 읊는 것에서부터 만만한 녀석이라는 걸 눈치챘다.
뭐, 이상한 병이라도 걸린건가?
어쨌든 예상했던 대로 녀석의 공격 따윈 아프지 않았다.
아픈 걸 떠나서, 아예 HP가 1도 깎이지 않았다.
대체 뭐야 이녀석?
곧 저녀석의 공격력이 내 방어력보다 낮아서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내 나는 저 녀석이 너무나도 한심해 보였다.
"생각보다 더 좇밥이었네?"
한 대 걷어차니까, 움직이지도 못하고 쓰러져 있는 게 참 꼴볼견이었다.
그래놓고도 깡다구는 있는 지, 계속해서 나한테 달려오는 게 아닌가?
"푸픕, 그래. 백날을 그렇게 때려봐라."
이렇게 해봤자 저 녀석은 내 HP를 조금도 깎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나는 일부러 녀석이 때리게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뭔가가 좀 이상한데?
"뭐, 뭐야 이 느낌은..."
분명 HP상으로 내가 입은 피해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이유 모르게 속이 울렁거린다.
단순히 배멀미라던가 그런 종류의 울렁거림이 아니었다.
안에서부터 큰 충격이 올라오는 느낌? 일정한 패턴으로 주먹을 날리는 데, 그 패턴에 맞춰서 충격을 받는 달까.
예전 과학시간에 진동수에 대해 언뜻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거랑 비슷한 건가?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아직까지 내 HP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니까.
내 생각보다 꽤나 끈질긴 녀석이었다. 몇분 째 계속해서 쉬지도 않고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계속 이러고 있는거지? 화나서 마구잡이로 치는 거라고 보기엔 너무 차분하게 때리는데?
그래도 별 생각 없이 난 가만히 있었고, 녀석도 아무 말 없이 묵묵하게 때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찌나 우스운 광경인지, 옆에 서있던 녀석이 쿡쿡 웃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그런데, 이젠 더이상 웃을 수 없게 되었다.
계속해서 녀석에게 맞고 있던 중(?), 문득 펴본 상태창에 올려져 있는 경고를 보고서 말이다.
[경고, HP가 50% 미만으로 감소했습니다]
뭐야?!
[경고, HP가 10% 미만으로 감소했습니다]
방금 전, 한 번에 HP가 40%나 깎여버렸다. 대체 뭣 때문에 이렇게 HP가 훅훅 깎이는 거지?
"설마, 네 녀석이 때린 주먹 때문에..."
그럴리가 없었다. 분명 방어력도 뚫지 못하던 공격인데 어떻게...
그 때, 녀석이 씨익 실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잘가라, 멍청한 새끼야"
쿵!
녀석이 내 턱을 향해 강하게 펀치를 날렸고, 놀랍게도 난 그 한방에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사망하셨습니다]
* * *
[살인자 표식이 붙은 플레이어를 처치하셨습니다!]
[제압자 표식이 부여됩니다. 앞으로 NPC와의 거래에서 특별 혜택을 받고, 명성과 인지도가 증가합니다]
[살인자가 소지하고 있던 모든 아이템 및 골드를 드랍합니다]
이렇게 한명은 손쉽게 처리했다.
참나, 60타 스택이 쌓일 때까지 아무 의심도 안하고 있는 빡대가리는 처음봤네.
그래도 옆에 있던 놈은 친구가 죽는 걸 보고 정신을 차렸는 지, 잽싸게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넌 한대도 못 때려."
단검을 들고 달려오는 공격을 유화술로 가볍게 피한 뒤, 가볍게 뒷목 넥슬라이스.
급소 부위 판정이라 추가 데미지 까지 들어가자 말그대로 주먹 한방에 원콤이 나버렸다.
연속공격 스택이 쌓여있을 때 다른 대상을 공격할 경우 스택은 초기화 대지만, 대신 그 공격은 쌓여있던 스택 대로의 데미지가 들어간다.
60타 스택을 쌓고 다른 대상을 때렸으니, 60타 스택 데미지를 주고 초기화 되는 것이다.
덕분에 손쉽게 전투를 끝내버릴 수 있었다.
이번 녀석은 PK가 아니었는 지 그 어떤 알림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쩐지, 너무 레벨이 빈약해보인다 했어. 아마 신참이었을 것이다.
나는 녀석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내 검을 주우며 중얼거렸다.
"좋아, 밑에 있던 두명 처리했고. 이제 한 놈인가?"
그 배불뚝이 상인 녀석. 넌 이제 진짜로 죽었다.
* * *
낚싯배는 그렇게 큰 배가 아니었다.
방금전까지 갇혀 있던 지하에 작은 방이 있긴 했지만, 정말로 그 좁은 방이 다였다.
위로 올라가자, 반층 올라가 있는 갑판에 코를 박고 자고 있는 뚱보가 보였다.
어우, 자는 것까지 정말 더럽게 못생겼네. 낙서해주기도 싫은 얼굴이다.
직접 운동을 통해 스탯을 늘리지 않는 이상, 비전투 직업의 HP는 100, 방어력은 0으로 고정된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기본능력치라나 뭐라나.
어쨌든, 체력이 꽤 낮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꽤 많이 때려야 할 것이다.
일어나기 전에 미리 스택 좀 쌓아둘까?
검을 이용하면 금방 깰 것 같아 일부러 주먹으로 살살 때렸다.
하나, 둘, 셋.... 열여덟, 열아홉, 스물.
지금까지 때린 데미지를 총 합해보면 대충 15 정도의 HP가 남았을 것이다.
그제서야 상인은 깨어났고, 날 보며 깜짝 놀랐다.
"이제야 일어났냐. 어떻게 이렇게 둔할 수가 있을 까."
나 너 다 때려놨는데. 너 한대만 때리면 죽어.
"흐엑! 어, 어떻게 네가 여기에..."
"아까 말했었지. 여기서 나가면 너부터 죽인다고. 사실, 그 약속 못 지켰어. 네 부하놈들 먼저 보냈거든."
"제, 제발 목숨만은..."
여기와서까지 목숨 구걸하네. 아까는 그렇게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처럼 행동하더만, 태세변환도 참 빨라.
근데 어쩌나, 난 너 살려줄 생각 없거든.
"여기서 죽이면 다시 바다에서 리스폰 되나? 뭐 어쨌든 알아서 잘 해봐. 앞으론 착한 짓좀 하고 살던가."
나는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한번에 녀석을 베어버렸다.
[살인자 표식이 붙은 플레이어를 연속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제압자 표식이 강화됩니다. 대륙에 당신의 이름이 소폭 알려집니다]
[일부 왕국에서 당신에게 은밀하게 흥미를 보입니다]
[살인자가 소지하고 있던 모든 아이템 및 골드를 드랍합니다]
일부 왕국이 날 흥미롭게 본다니... 왜 하필이면 은밀하게 보는 건데?
뭐 어쨌든, 명예 수치가 증가한 다는 건 좋은 일겠지.
여섯 번째 차원석은 역시 상인 녀석의 인벤토리에 있었다.
여기서 더 있고 싶은 생각 따위 없었다. 아이템 몇개만 적당하게 챙긴 뒤 텔레포트 수정을 만들어 바로 떠났다.
내 원래 목적지었던, 기회의 땅 에란젤 중앙왕국으로 말이다.
========== 작품 후기 ==========
전 언젠가, 독자분들의 코멘으로 가득찬 댓글창을 상상했었습니다... 현실은 제 댓을 제외하고 총 두분이 달아주셨네요... 그분들의 코멘이라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죠 감사합니다 두분 흐에에엥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