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타, 너무 세잖아 -->
5화.
"으아아아아아!"
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비명을 질렀다.
사실, 예전부터 난 발에서 땅이 사라지는 그 느낌이 너무 싫었다.
그냥 밟을 곳이 사라지면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주변 사람들은 고소공포증 같은 거 아니냐는 소리를 많이 했었다.
쾅!
수많은 흙먼지들과 함께 우리는 다시 땅을 밟게 되었다.
"여기가... 맞죠?"
"네, 거인의 대장간인 것 같네요"
깡! 깡! 깡!
최소 2층 건물 키 정도 되는 거인이 모루 위에 검 한자루를 놓고 메로 두들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온 것을 눈치 챘는 지, 곧 몸을 돌려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아 씨..."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네.
거인의 얼굴은 연탄재에 심하게 그을린 듯 흉측한 모습이었고, 눈 부분만 빨갛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거인이 털썩 일어나 머루에 올려두었던 검을 쥐고는, 곧장 우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쟤를 잡고 가야할 것 같죠?"
"그럴 것 같네요. 흐아, 몰래들어가서 가져오기만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뭐 어쨌든 비상구 따윈 보이지 않았으니 살아나가려면 거인을 잡아야 했다.
"온다!"
거인이 달려오던 힘 그대로 뛰며 검으로 땅을 내리찍었고, 나는 즉시 유화술을 한 번 사용했다.
시작부터 생존기를 빼먹긴 했지만, 범위공격이라 어쩔 수 없지.
"저 한 대 맞으면 죽어요. 최대한 어그로 좀 끌어주세요"
"아 그렇지... 노력은 해볼게요"
테오는 내가 레벨이 낮아 HP가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맞긴 하지. 정확하게는, 레벨이 낮아서가 아니라 그냥 1로 고정인 거긴 하지만.
거인과 테오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를 틈 타 나는 뒤를 돌아 다리를 노렸다.
팅팅팅!
데미지 1짜리 공격은 역시 방어력을 뚫는 것조차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원래는 조금만 때려도 적을 넘어지게 할 수 있는 급소부위가 발목인데, 거인은 자신이 맞은 것 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뭐, 내 입장에선 좋은 거지.
충분한 딜이 나올 스택을 쌓을 때까지 들키지 않고 공격할 수 있었으니까.
거인의 공격은 꽤나 빠른 편이었지만, 테오가 앞에서 대부분을 맞거나 막아주었다.
가끔씩 위험해보이는 범위공격이야 유화술로 피하면 그만.
그동안 내 연속공격 스택은 30회까지 쌓이게 되었고, 125라는 무시할 수 없는 공격력을 얻게 되었다.
드디어 이 망할 방어력을 뚫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좋아, 이젠 태세변환이다."
나는 거인의 발목을 거세게 베어버렸고, 드디어 발목 가죽을 뚫고 출혈을 낼 수 있었다.
"키에에에엑!"
육중한 몸집과 달리 거인에게서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녀석은 검을 수직으로 꽂아 몸을 지탱했고, 그동안 나는 테오에게 소리쳤다.
"잠시동안 못 움직일 테니까, 때릴 수 있는 최대한 때려!"
"오케이!"
쉴 새도 없이 마구잡이로 거인을 때리기 시작했다.
38, 39, 40, 41, 42...
드디어 40타 째. 무려 625의 데미지가 들어간다.
방어력을 감안하더라도 최소 500 데미지.
12,000 정도 되는 거인의 HP가 눈에 띄게 낮아지기 시작했다.
47타, 48타, 49타...
"한대만 더 때리면 끝이다!!"
그러나 이때의 잠깐 머뭇거림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야 말았다.
다시 몸의 균형을 잡은 거인이 일어나, 날 한손으로 낚아채간 것이다.
"현우ㅇ.... 으윽!"
테오가 거인의 발에 차여 나가떨어져버렸다.
이거 더 안좋아 졌어.
설령 내가 붙잡혔더라고 해도 테오가 멀쩡하다면, 죽기 전에 거인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HP가 떨어져있었으니까.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거인이 분노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거인의 HP 회복중 : 8%, 9%, 10%...]
이딴 패시브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설령 내가 살아 빠져나간다고 해도, 이렇게 자가치유가 된다면 다시 어려운 상황에 처해질 터였다.
"젠장할"
제압상태라 스킬도 사용할 수 없었다.
빠져나올수도 없고, 어떡하지?
때마침, 거인이 날 땅바닥을 향해 내던져버렸다.
순식간에, 나는 2층건물 높이에서 추락하게 되었다.
낙하데미지로 1은 충분하고도 넘쳐나지. 땅에 닿는 순간 바로 즉사일 것이다.
'안돼... 다 잡은 걸 여기서 놓칠 순 없어'
그 순간, 한가지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쳤다.
스킬사용이 불가능한건 제압상태일 때.
비록 떨어지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지금은 엄연히 제압상태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는 건... 지금은 스킬 사용이 가능하다는 거네?
확인해볼 방법은 시도해 보는 것뿐.
머리가 땅에 닿기 직전, 나는 재빠르게 유화술을 사용했다.
"흐억, 허억..."
죽다 살아났네. 유화술을 시전하자 낙하 가속도는 사라졌고, 나는 가볍게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 스택이 초기화되기 전에 한 타.
50.
거인의 HP는 다시 최대로 찼지만, 나는 3,125라는 어마무시한 데미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발동되는 또 하나의 패시브 스킬.
둥. 둥. 두둥. 둥. 둥...
입문 수련장을 수료하며 얻게 된 진동 공격이었다.
모든 객채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진동수.
현재 내 표적인 거인의 진동수가 온 감각을 통해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빠르지는 않아. 할만하다"
만약 진동수를 맞춰 공격을 한다면, 한 대에 대략 3,800의 데미지가 들어간다.
테오는 없다고 생각하자. 이제부턴, 저 녀석과 나의 승부다.
"하아압!"
큰 궤적으로 날아오는 검을 굴러서 피한 뒤 51, 52, 53.
한 대만 더 때리면 잡았겠지만, 바로 날아오는 공격 때문에 유화술을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나타나는 절망적인 메세지.
[거인의 분노가 가득차 각성상태에 도달했습니다]
[누구도 거인을 막을 수 없습니다! 거인의 HP 회복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망할"
때리고 때리고, 아무리 때려도 거인의 HP는 줄지를 않았다.
"이렇게 된 거, 이거 밖에 방법이 없다"
60타 스택을 쌓는다. 여기에 진동 공격까지 발동해 한 방에 끝낸다.
그 전에 죽일 수 있는 방법따윈 없었다.
나는 진동수에 최대한 감각을 기울이며, 빠르게 거인의 공격을 회피했다.
각성상태가 되며 공격속도도 빨라져, 한 대 때리고 바로 피해야 했다.
54, 피하고 55, 피하고 56...
유화술을 사용해 빠르게 달린 뒤 거인의 반대쪽 발목을 베었다.
"키에엑!"
거인은 잠시동안 기절상태에 빠졌지만, 금세 다시 일어서는 자세를 취했다.
57, 58, 59...
그 잠깐 사이 거인은 일어났고, 회복력 때문에 HP는 거의 줄지 않은 상태였다.
검을 두손으로 잡고 나를 향해 거세게 휘둘렀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둥, 둥, 두둥...
"지금이다!"
쿠구구궁!!!!!
진동수에 맞춰 60타째 검을 휘둘렀고, 거대한 소음이 대지를 갈랐다.
========== 작품 후기 ==========
실수로 지워버려서 다시 올립니당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