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퀘스트는 동료와 함께 -->
4화
"으으, 여기 쯤인가..."
퀘스트를 수락하면서 반드시 감수해야 할 게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내가 길치라는 것.
시작 마을 광장처럼 많이 다녀본 곳은 잘 알지만, 지도를 보며 처음 찾아다니는 건 정말 힘들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지도 같은 것도 없이 뒷숲 왼쪽편이라는 것만 듣고 왔으니...
대체 어떻게 찾으라는 건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한참동안 숲속을 방황하고 나서야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안 나올리가 없는데?"
한 시간 가량 돌아다녔는 데도 동굴은 커녕 언덕 하나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작마을의 건물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경고! 안전지역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즉시 돌아가십시오. 곧 HP가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으아, 뭐야 이건?!"
막상 위험 표시가 뜨면서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길을 잃어버렸으니, 어느 쪽으로 가야지 안전지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다른 방향으로 갔다가 더 멀어지면...
그때, 숲 앞쪽으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도 안전지역을 찾는 듯, 빠르게 뛰어다니며 여기저기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저기..."
"나, 나좀 살려ㅈ..."
우왕자왕 당황하며 그에게 다가가려던 그때.
[HP가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안전 지역 밖에서 사망하셨습니다]
[시작마을 중앙광장에서 리스폰 됩니다]
"아..."
HP가 1 뿐이라는 건 여러모로 빡치는 일이었다.
약간의 피해라도 입으면 바로 죽어버린다.
방어력을 올리거나 전투할 때처럼 회피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지금처럼 고정피해가 들어올 때.
정말 방법 없이 속수무책으로 죽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안전 지역 밖에서의 사망은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대기시간 없이 즉시 리스폰 됩니다]
그래도 이건 그나마 낮네.
잠시 후 나는 다시 광장 앞에 서 있었다.
방금 전 나와 안전지역 밖 숲에 있었던 남자도 같이 있었다.
"..."
"..."
저 사람도 나랑 비슷하게 죽은 듯 했다. 안전지역에서 조금 오래 벗어나 있다가 HP가 다 닳아 죽었겠지.
이렇게 리스폰해서 다시 만나니, 레벨이 꽤 높아보였다.
화려하게 치장된 철제 갑옷과 엄청나게 무거워 보이는 대검을 착용한 상태.
그런데, 뭔가 살짝 눈치보이네.
아까 그렇게 죽어놓고 이렇게 다시 만나니 되게 어색하다.
뭐, 어차피 더는 볼일 없을... 줄 알았는데.
"...왜 따라 오세요?"
"그러는 님은...?"
대체 왜 이 사람, 나랑 같은 길을 가는 거지?
"저 지금 비공개 퀘스트 중이라... 같이 다니시면 좀 곤란한데."
어? 이 사람 뭐야?
혹시 이 사람도...
"저기, 혹시 비밀 동굴을 찾는 퀘스트 하세요?"
"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저도 똑같은 퀘스트 중이거든요"
"아, 그렇군요. 그럼 같이 하실래요? 제가 좀 길을 못 찾아서"
"잘됐네요,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당연한 소리지만, 게임 속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보는 낯선 사람을 믿고 같이 일을 하는 게 현실에서 가능 하겠어?
"동굴 위치가 어딘지는 아시죠?"
"네... 뒷숲에서 왼쪽으로 조금 더 가라고 들었어요"
"더 들으신 건 없으신가 보네요... 아참, 혹시 이름이?"
"아, 전 테오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제 이름은 현우입니다."
"본명 그대로 쓰셨나 보네요"
어쨌든, 아무리 아는 게 많이 없다고 해도 없는 것 보다는 같이 다니는 게 나을 것이다.
"일단, 갔던 방향을 제외하고 다시 가보도록 하죠. 테오 씨는 어느쪽으로 가셨어요?"
사냥터 왼쪽을 전제로 잡아둔 상태였다.
"음, 저는 여기서 좀 더 왼쪽으로 갔었어요"
"그런가요. 저는 그냥 가운데로 갔었거든요. 두 방향에서 만날때까지 아무것도 없었으니, 아마 동굴은 저쪽에 있을 확률이 높을 거에요"
"오오! 똑똑하시네요"
우리는 뒷숲의 오른쪽으로 향했다.
아니, 왼쪽으로 튼 다음 오른쪽으로 갔으니 중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으아, 이 쪽인게 맞는 걸까요? 동굴 같은 건 안보이는데"
"아직 안전지역 안이니까, 조금 더 가보기로 하죠."
안전지역 경고표시가 나타나면, 방향을 틀어 다른 곳을 찾아보면 된다.
사실, 이때까진 안전지역을 벗어나기 전에 동굴을 발견해낼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굴이 있을 자리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경고! 안전지역을 벗어나셨습니다]
[즉시 돌아가십시오. 곧 HP가 닳기 시작합니다]
"말도 안돼..."
안전 지대 한 걸음 안으로 돌아온 나는 충격에 빠졌다.
"그럼 대체 동굴은 어디에...?"
왼쪽 뒷숲은 전부다 뒤져봤다. 그렇다면 나올 수 있는 결론은 두 가지.
"동굴이 오른쪽에 있거나, 아니면 그 가게주인이 거짓말을 한 것이거나"
정식 퀘스트로도 나타났기 때문에 후자일 확률은 적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죠?"
"아직 숲에서 안 둘러본 곳이 있잖아요. 오른쪽이라도 한번 찾아보죠"
레벨은 그가 훨씬 높았지만, 어째 오더는 전부 내가 내리는 느낌이다.
하긴 내가 예전에 워랜드를 좀 많이 했었지. 순수 경험만으로는 내가 더 위다.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리네, 칫... 어?"
투덜거리며 발로 돌멩이를 걷어차자 돌멩이는 몇번 튕기다가 바닥으로 쑥 빠졌다.
분명 일반적인 땅처럼 보였는 데, 땅바닥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뭐라도 찾으셨어요?"
"잠깐만요, 아직은 확실하지가 않네요"
나는 한쪽 눈만을 뜨고 엎드려 구멍 틈을 노려보았다.
램프로 빛을 밝힌 지하 거대 공간이 있었고, 가운데는 대장간 도구들로 보이는 기구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테오 씨, 제가 찾은 거 같아요"
"오, 정말요?"
나는 테오 씨에게 구멍 속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쳐들어간다면 몰래 몇 개를 빼돌리는 건 불가능하겠네요"
"굳이 그럴 필요 있나요? 잡으면 되죠"
나는 아주 뻔뻔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테오 씨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검을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이 바닥을 무너뜨릴 겁니다. 꽉 잡으세요!"
"네!"
쿵!
거대한 대검의 끝이 땅에 닿았다.